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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면(陽村面)의 건치연혁(建置沿革) 게시판 상세보기

[논산문화원] - 역사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양촌면(陽村面)의 건치연혁(建置沿革)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5-08 조회 1265
첨부 hwp 0701d_27.hwp
양촌면은 백제시대(百濟時代)에는 황동야산군(黃等也山郡)에 속
했으며, 신라시대(新羅時代)에는 황산군(黃山郡)에 속했다. 고려
시대(高麗時代)에는 연산현(連山縣)에 이어 은산현(恩山縣)에 속
했었다.

조선시대 말엽에는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의 지역으로
방축(防築), 신평(新坪), 송정(松亭), 차곡(磋谷), 거사(居士),
갈전(葛田), 죽내(竹內), 신흥(新興), 남산(南山), 침동(沈洞),
가사(柯士), 고리(古里), 웅천(熊川), 신계(新溪), 봉명(鳳鳴),
왕대(旺垈), 중명암(中鳴岩), 하명암(下鳴岩), 신량(新良), 반곡
(盤谷), 서당(書堂), 원북(院北), 산직(山直), 상웅기(上熊岐),
장동(壯洞), 하량(下良), 황산(黃山), 시목(枾木)의 28개리를 관
할해오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적사곡면(赤寺谷面), 동상
리(東床里)와 내적면(內赤面)의 고정리(高井里) 일부와 은진군
가야곡면(可也谷面)의 석서리(石西里) 일부와 갈마면(葛麻面)의
방현리(防峴里)와 전라북도 전주곤 양량소면(陽良所面)의 물한
(勿汗), 반암(半岩), 제비(諸非), 도정(道井), 상사(上沙), 하사
(下沙), 신기(新基), 고암(高岩), 상리(上里), 중리(中里), 오산
(梧山), 채동(采洞), 신리(新里), 임하(林下), 양촌(陽村), 월장
(越墻), 본장(本場), 동산(東山), 하광(下光), 상광(上光)의 20
개리롸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의 도상(道上), 도하(道
下), 상리(上里), 중리(中里), 하고(下高) , 신교(新橋), 백촌
(柏村), 계전(桂田), 무수(無愁), 상고(上高), 구만(九萬)의 11
개리를 병합하여 양량소(陽良所)와 모촌(茅村)의 이름을 따서 양
촌면이라 하여 논산군에 편입되어 거사(居士), 남산(南山)、도평
(道坪), 모촌(茅村), 명암(鳴岩), 반곡(盤谷), 반암(半岩), 산직
(山直), 신기(新基), 신량(新良), 신흥(新興), 오산(梧山), 양촌
(陽村), 인천(仁川), 임화(林花), 채광(采光)의 16개리를 관할하
였다.

그후 1973년7월1일 가야곡면 석서리를 양촌면에 편입하였고,
1983년2월15일 대통령령에 의하여 가야곡면 중산리와 양촌리 일
부를 양촌면 중산리로 편입시키고, 양촌면 신양리가 연산면에 편
입됨에 따라 양촌면은 17개 리를 관할하는 면이 되었다.

총면적은 75.1㎢로 경지면적이 16.9㎢, 임야 48.3㎢, 기타
9.9㎢이며, 17개 법정리에 41개 행정리(1992년 거사3리, 인천4
리 2개 행정리가 증편), 87개의 자연부락, 153개 반으로 되어 있
다. 인구는 2,567세대에 남자 4,567명, 여자 4,565명으로 총
9,132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993.12.31 현재)

특산물로는 곶감, 딸기, 인삼, 밤, 마늘 등인데 곶감은 연간
320M/T을 생산하여 논산군의 75%를 차지하고 있어 대표적인 특산
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