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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면(恩津面)의 건치연혁(建置沿革) 게시판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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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진면(恩津面)의 건치연혁(建置沿革)
작성자 논산문화원 등록일 2002-05-08 조회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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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恩津)은 조선시대초에 덕은군(德恩郡)과 시진현(市津縣)
이 합하여 은진현(恩津縣)이 되었는데, 덕은군은 백제시대(百濟
時代)에 덕근군(德近郡)이라 하던 것을 신라 경덕왕(景德王)때
덕은군(德恩郡)이라 개칭하고 고려초에 다시 덕은군(德恩郡)이
라 고치었다.

시진현(市津縣)은 본래 덕근군(德近郡)의 영현(領縣)으로 가지
내현(加知內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때 시진현이라 하고 고려 현
종 9년에 덕은(德恩)과 시진(市津)이 함께 공주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조선 태조 6년에 양현(兩縣)을 합하여 덕은감무(德恩監
務)를 두고 세종원년(世宗元年)에 은진(恩津)이라 개칭하여 현감
(縣監)으로 승격하였다. 일정초기에 은진군(恩津郡)이 되었다가
은진면(恩津面)으로 개편되어 논산군에 속해 오늘에 이르고 있
다.

은진면은 본래 은진현(恩津縣)이 있었던 곳으로 한새의 이름을
따서 대조곡면(大鳥谷面)이라 하여 북문(北門), 장암(場岩), 방
축(防築), 토현(ꧏ峴), 상리(上里), 홍문(紅門), 연서(蓮
西), 용
와(龍臥), 백양(栢楊), 세피(世被), 산직(山直)의 11개리를 관할
하다가 1914년 군면(郡面) 폐합에 따라 성본면(城本面)의 죽곡
(竹谷), 동산(銅山), 강산(薑山), 해창(海倉), 삼거리(三巨里),
길음(吉音), 남산(南山), 등리(登里)의 8개리와 송산면(松山面)
의 의승(義承), 교촌(校村), 내동(奈洞), 대하(大河), 와야(瓦
也), 광교(光橋), 중리(中里)의 7개리와 도곡면(道谷面)의 신대
(新垈), 갈현(葛峴), 웅전(熊田), 토량(土良)의 4개리와 화지산
면(花枝山面)의 취암리(鷲岩里)와 가야면(可也面)의 두월리(斗月
里)의 석성군(石城郡) 정지면(定止面)의 하리(下里) 일부와 삼선
면(三仙面)의 하장리(下長里) 일부와 전라북도 여산군(礪山郡)
피제면(皮堤面)의 사천리(沙川里) 일부를 병합하여 다시 대조곡
면(大鳥谷面)이라 하여 논산군에 편입되어 교촌(校村), 강산(薑
山), 남산(南山), 내동(奈洞), 방축(防築), 연서(蓮西), 용산(龍
山), 해창리(海倉里), 등리(登里), 와야(瓦也), 토량(土良)의 11
개리를 관할하다가 191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논산군 은진면
(恩津面)이 되었다.

그후 1938년4월1일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은진면의 등리(登
里), 해창리(海倉里)를 논산읍에 편입시키는 동시에 논산읍의 관
촉리와 부적면의 성평리(城坪里), 가야곡면의 종연리 일부와 성
덕리(城德里)를 은진면에 편입하여 12개리가 되고, 1963년1월1
일 연무읍이 신설됨에 따라 구자곡면(九子谷面)의 시묘리(侍墓
里)를 편입 13개리를 관할하였다.

1983년2월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83.1.10공포)로 은진면 토
양리 일부를 연무읍에 편입하였고, 1987년1월1일 대통령령 제
12007호(’86.12.23공포)로 은진면 내동리, 강산리, 관촉리를 논
산읍으로 편입 은진면은 현재 10개리를 관할하고 있다.

총면적은 22.30㎢로 경지면적이 12㎢, 임야 5.6㎢, 기타4.7㎢이
며, 현재 10개 법정리에 28개 행정리, 88개 바능로 편성되어 있
고, 60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인구는 1,855세대에 남자 3,377명, 여자 3,282명으로 총 6,659
명(1993.12.31 현재) 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