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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 윤빙삼 ▷ 청남면 지곡리 게시판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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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효자 ▶ 윤빙삼 ▷ 청남면 지곡리
작성자 청양문화원 등록일 2002-08-10 조회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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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면 지곡리 지곡 마을에서 조용히 농사를 짓는 윤빙삼은 가난
한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윤빙삼의 어머니는 남달리 몸이
허약하여 병석에 누워 계시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빙삼은 나
이 여섯살때 부터 어린 몸으로 집안일을 도우며 어머니의 병수발
에 온 힘을 기울였다. 약 심부름은 물론 농사일 부엌일까지 빙
삼이 전부 해야 했다 그러자 이웃 아주머니들은 빙삼을 불쌍히
여기고 자주 빙삼의 집에 와서 빙삼을 돌보아 주었다 빙삼의 아
버지는 착한 선비로서 바깥 출입이 많아 집안 일은 거의 돌보지
않았다. 빙삼은 점점 철이 들어감에 따라서 아무리 어렵고 힘
든 일이라 하더라고 모든 일을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새
각하고 이웃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였
다. 그렇지맞 동리(洞里)의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죄송스런 생각
이 들어서 더 열심히 일을 했으나 워낙 나이가 어려 마음대로 일
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던 어느 봄날 그렇게도 정성을 다하여
간호해 드린 어머님께서 그만 이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빙삼
의 슬픔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빙삼은 어머니의 영정에 끓
어 엎드려 통곡하면서 "어머니 고이 잠드소서 .... 불효한 소자
는 아버님을 모시고 기울어져 가는 이 집안을 되세워 행복하게
살아 가겠습니다. 하고 맹세하였다. 빙삼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
른 후에도 매일같이 산소를 찾아 애통하기를 삼년이나 계속하였
다. 그러나 빙삼은 집안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홀로 계시는
아버님을 모시고 부지런히 농사 일을 돕고 아침 저녁으로는 부
엌 일을 맡아 아버님을 공양하였다. 그런던 어느날 마을에 사
는 아저씨가 찾아와 아버지에게 좋은 혼처가 있으니 재혼 할 것
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아버님께서는 어린 빙삼을 생각하여 재
혼을 거절하셨다. 이러한 사살을 알게된 빙삼은 어버님 불효소
자는 어버님께서 새 어머니를 모셔드려 이 가정을 따뜻하게 이루
어 주시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마 돌아가신 어머니
의 영혼을 위로해 드리는 길이 아닌가 하옵니다. 하고 말씀드렸
으나 어버님은 지하에 계신 너의 어머니 영혼도 내가 새 장가를
드는 것을 원치 않고 계실 것이라고 재혼을 거절하였다. 그러
나 빙삼이 재혼을 권고하여 아버님의 승락을 받은 후 마을 아저
씨를 찾아가 새어미를 모실 수 있도록 청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 해 가을에 새어머니를 맞아 드렸다. 빙삼은 새 어머니에게
자기를 낳아 주신 어머니 못지 않게 정성을 다하여 섬겼다. 쓸
쓸하고 메말랐던 집안은 생기가 일기 시작하고 웃음이 방안에 가
득차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빙삼의 갸륵한 정성을 크게
칭찬하였다. 그 후 행복하던 빙삼의 가정에 또 다시 먹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어버지께서 무거운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
다. 그래서 빙심은 새엄니와 같이 약을 구하고 용하다는 의원
은 모두 불러 댔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드디어 생명이 촌각에
이름을 깨달은 빙삼은 조그만 은장도로 자기 허벅다리를 찔러 피
를 내서 약사발에 담아 호흡이 거칠은 아버님의 입속으로 흘려
넣었다. 빙삼은 다리의 아픔을 생각 할 겨을도 없이 오직 죽음
앞을 헤매시는 아버님의 숨결만을 지켜 보았다. 지성이면 감천
이라고 어버님의 얼굴에서 점점 화색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그
로부터 병환은 점점 회복되어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시고 아버님
은 5년을 더 사시다가 70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이 이야기를 들
은 당시 숙종 대왕께서는 탄복하시고 벼슬을 내리는 동시 에 후
세에 길이 전할 효자비를 세우도록 하였는데 지금도 이곳에 방삼
의 효자비가 있어 후세에 본보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