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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 노일용(盧逸龍) ▷ 비봉면 녹평리 게시판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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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효자 ▶ 노일용(盧逸龍) ▷ 비봉면 녹평리
작성자 청양문화원 등록일 2002-08-19 조회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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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들새들도 추위에 못견디겠는지 들새

떠도 보이지 않는 들이였다.

아침 밥상에 굴비 있었으면 밥상에 굴비가 있었으면 밥맛이 나겠

다는 오늘 아침 어버지의 쓴 웃음이 언뜻 그의 머리를 스쳐갔

다. 눈이 많이 내린 탓인지 장보라 가는 장꾼도 없는 눈보라의

길을 나무를 한지게 짊어지고 조심성 있게 들길을 걸어간다.

장각 한짐이면 굴비 한두르미는 사겠지! 그는 굴비를 사기 위해

서 나무를 지고 장터로 나가는 것이었다. 들과 강을 걷다가 산비

탈 길을 용하게도 걷는다. 그는 이윽고 장터에 나와선 얼어 붙은

것 같은 양쪽의 귀를 두손으로 만져 봤다. 얼음보다 찬 양쪽 귀

가 싸늘한 것 같았다.

이윽고 발이 절여오기 시작했다. 손님도 없는 장거리 뗏집으로

들어갔다. 손에 드는 엽전이 없어서 뜨거운 국물을 한사발 마시

고는 나무짐 근처에 와서 웅크리고 앉는다. 오늘따라 나무장사

는 하나 뿐이었다. 그래서 장작은 쉽게 팔렸다. 그래서 곧장 어

물상회에 가서 굴비를 한두르미 샀다. 그래도 돈이 남았다. 그래

서 소금을 몇되박 사서 지게에 매달고 길을 재촉했다. 아침 밥

도 먹지 않은 그는 집에 돌아오면서 시장기를 느끼기 시작했

다. 바지 끈을 잔뜩 졸라매고 굴비 한 두르미를 몇번이고 쳐다보

면서 집에 들어섰다. 헌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아버지가 방에

누워서 신음소리를 내며 앓고 잇는 것이었다. 그는 앞이 캄캄했

다. 굴비를 막고 싶다고 해서 굴비를 사왔는데 그길로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선 부엌에 들어가서 밥

사발을 들었다. 단숨에 밥을 먹고 불을 피운 다음 굴비를 굽기

시작했다. 굴비를 구워서 밥상을 차리게 하고 밥상을 들고 들어

갔다. 굴비를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아버지는 굴비를 손에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허나 허약한 아버지는 수저를 몇번 움직였

을 뿐 수저를 놓고 누워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머니도 병

석에 눕게 되었다. 부모님이 병석에 눕게 되자 그는 더욱 고통

이 많아 졌다. 부모님이 변소에 가면 부모님을 변을 보고 약방으

로 달려갔다. 부모님의 똫을 보고 그는 약방에 가서 자세히 말하

였지만 한의사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더니 약이라고는 마직막으

로 한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즉 꿩의 알이 좋을 테니 꿩의 알

을 구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꿩의 알을 구하기 위해 산중을

헤매었다. 바위틈에서 잔솔이 있는 나무사이를 뒤져다. 꿩은 날

아다녀도 꿩알은 냉큼 발견되지가 않았다. 그는 그래도 헤매였

다.

그가 꿩의 알을 찾기위해 비탈길을 돌아서는데 자기앞에서 꿩이

파다닥하고 나르더니 알을 땅에 덜어뜨린다. 그는 허둥지둥 꿩알

이 떨어진 곳을 찾아갔다. 거기엔 꿩알이 하나뿐이 아니라 몇개

가 오붓이 놓여 있었다. 그는 하늘이 돕는 것이라고 꿩알을 주워

서 집에 가지고 와선 부모님 약으로 썼다. 허나 부모님의 병은

꿩알도 필요가 없었다. 부모님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 지시더니

그만 차례차례로 돌아가시는 것이었다. 그는 보모님을 잃고 통곡

을 하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부모님의 산소를 쓰고 그는 너

무도 슬픈 나머지 모 옆에 뗏집을 짓고 아침 저녁으로 차례를 올

리며 시묘를 시작한 것이다. 깊은 산중엔 밥이면 호랑이의 울음

소리도 들려왓다. 허나 호랑이의 울음소리도 무섭지가 않았다.

오직 부모님에게 효심이 가득한데 산 짐승이 부모님의 묘소를 헤

칠까봐 밤에도 묘 근처를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부모님 생각이

복받치면 산소 옆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자을 자기도 했

다. 그런 세월이 얼만큼 흘렀을때였다. 하루는 부모님 묘 근처

에 사에서 산불이 났다. 산불은 활활타기 시작하던 부모님 산소

옆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근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느데 어

디선가 산새가 날아와서 자기 아에 알을 던지며 날아갔다. 불연

듯 그 산새의 알을 불덩이 속에 던졌다. 그랫더니 이상하게도 산

불이 꺼지기 사작했다. 그래서 부모님 산소에 번지는 산불을 끄

는 것이었다.

그의 정성어린 효심은 끝내 나라에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조

18대 현종때 임금님께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노일용(盧

逸龍)의 효행은 옛날 중국의 요(堯)나라의 효자왕양(孝子王洋)

과 버금가는 효자라 극찬하며 비봉면 녹평리에 孝子旌閣(효자정

각)를 내리게 하고 길이 빛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