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효자 ▶ 임예걸 부자 ▶비봉면 장재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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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8-19 | 조회 | 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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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몇년씩 계속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금년 겨울부
터는 눈이 하얗게 쌓이더니 이른 봄부터 진눈깨비가 내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들에는 꽃이 일찍 피기 시작했고 산 과 들에 마구 돋아나서 허기진 배를 산나물로 채울수 잇는것이 여간 기쁜일이 아니었다. 금년 보리고개만 넘긴다면 그럭저럭 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해서 마을마다 농군들의 얼굴이 여간 환한 것이 아니였다. 지금의 장대리 두러리에 사는 임예걸(林禮傑) 도 그동안의 고생을 잊은 듯 들에 나갔다. 들에는 사람들이 논 에 물을 대느라고 어수선했다. 그도 논에 나와서 생각하기를 금 년 일년만 이논에 벼이삭이 축 늘어진다면 하고 논물을 한주먹 쥐여보는 것이었다. 금년에 풍년이 든다면 가정 사정도 훨씬 나 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집에 돌아왔다. 그는 사랑방에서 어버지 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사랑방으로 뛰어갔다. 조금전까 지만 해도 건강했던 아버지가 배를 움켜잡고 고통스럽게 신음소 리를 낸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어버지가 배를 움켜잡고 아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때부터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는 한약 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약을 지어가지고선 집으로 달려와선 약을 달여 드렸다. 허나 어찌된 일인지 약의 효력도 없이 아버 지는 더욱 신음소리가 높아갈 뿐이다. 그후 그는 근방의 이름 있는 한의사는 모조리 찾아다녔다. 그래서 약을 써봤지만 소용 없는 일이다. 그날도 그는 약을 구하느라고 몇십리 길을 걸어갔 다가 홍주땅 한약방 집에 들렸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홍 주땅의 한의사는 한참동안 귀를 기울이더니 머리를 좌우로 흔들 고선 이렇게 말을 하였다. "사람 속병이야 곰의 쓸개와 산노루 피나 고기 밖에 더 있겠소 댁의 춘부장은 오랫동안 누워있으니 노루 피야 안되겠고 노루 고 기나 구해 드리는게 좋겠고 그외로는 약이 없겠구먼.... 홍주땅 한양방까지 찾아왔건만 약은 주지도 않고 노루 고기를 구해드라고 말하고 돌아앉는다. 그는 그때부터 노루고기를 구하 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노루고기를 구하기 위해 수소문 해봤지 만 포수 한사람 없는 이 근처에서 산노루를 구하기 쉬운 일이 아 니었다. 그는 산노루가 있다는 산을 샅샅이 헤맸다. 허나 누루는 발견되 지가 않았다. 하루는 그날도 몽둥이 하나를 들고 산노루를 구하 기 위해 집에서 나와 松大山(송대산)에 올랐다. 그는 산에 와 서 무릎을 꿇고 산신령께 이렇게 빌었다. 산신령님 산신령님 우리 부친 병환에서 구해주소서 부친임을 알 고 누워계신 것을 저는 차마 못보겠습니다. 저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길을 트여 주십시요 그는 이렇게 산신령게 빌고 산을 뒤졌다. 산을 한참 오르다 보 니 앞에서 파다닥 하고 뛰는 것이었다. 그는 산토끼인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산노루였다, 그는 눈이 번쩍했다. 그는 눈이 번쩍했다. 그래서 뒤를 쫓기 시작했다. 산노루가 뛰는 방향으로 얼마나 따 라 왔을까? 그도 뛰어서 숨이 가빴다. 허나 숨이 가쁜 것이 문 제가 아니었다. 그가 노루를 쫓다보니 앞에 강물이 나왔다. 그 느 힘을 다하여 강물쪽으로 산노루를 몰았다. 그리고 강물로 뛰 여든 산노루를 강물로 뛰어가서 잡아 가시고선 부친께 약을 하 여 드렸다. 효자 임예걸의 아들도 아버지 못지 않은 효자였다. 예걸이 늙어서 병에 눕자 그 아들은 어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온정성을 다했다. 어버지가 음식을 찾으면 그 음식을 구하기 위해 이름있 는 한의사를 찾아 공주까지도 왔었다. 하루는 한 의사가 말하기 를 그대 아버지 병에는 숭어가 좋다고 말하자 그는 숭어를 구하 기 위해 강변으로 나왔다 추운 겨울이라 강변은 꽁꽁 얼어 붙었 다. 그는 강에 나와서 어름을 깨고 그 자리에 앉아서 고기를 잡으려 하였으나 숭어가 있을리가 만무하였다. 그는 강뚝에 앉 아서 대성통곡을 하자 자기가 깨놓았던 얼음판 근처에서 고기가 물속에서 뛰여 올라와선 펄떡 펄떡 뛰고 있었다 그래서 가까이 가보니 큰 숭어가 얼음판 위에서 뛰고 있었다 그래서 이것은 틀 림없이 천신의 도움이라고 생각하고 그 숭어를 가지고 와선 아버 지를 봉양해 드렸다. 천하의 효자란 부모님의 말을 잘 해석하 고 뜻에 따른 것이고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의 은덕을 항시 효심으로 받드는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효심에 틈 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님의 뜻을 잘 해석하지 못한데서 나온다 는 것이다. 이렇게 효심의 뜻까지 해석하던 그와 그의 아버지 임예걸의 높은 효심을 후대에게 알리기위해 여기 장재리에 효 자문이 서있으니 이는 여러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일이라 하겠 다. 효자문에선 후손들이 모년 음역으로 10월 6일 시제를 지내 고 그 높은 효행의 뜻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후손들이 모 여서 옛날의 길이 빛내는 날로 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