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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대구서씨 ▶화성면 용당리 게시판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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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녀▶ 대구서씨 ▶화성면 용당리
작성자 청양문화원 등록일 2002-08-30 조회 1265
첨부  
 
열녀(烈女) 대구서씨(大邱徐氏)의 열녀문(烈女門)이 화성면(化
成面) 용당리(龍當里)에 있다.
서씨는 이조 철종때의 영의정으로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조두순
(趙斗淳)의 아내로서 조정승이 정계에서 은퇴하여 기소로에 들
어가자 그남편의 시종을 드는데 여념이 없었다. 일생동안 정계
에서 그 복잡 단단한 정사에 임하여 항시 피로한 나날을 보내는
남편 시중을 일생동안 온 정성을 바쳤으며 남편이 이 세상에 살
아 있으므로 자기의 목숨도 이 세상에 자라히게 되었다고 생각했
었다. 그래서 그녀가 항상 근심하는 것은 남편이 때때로 피로
에 지쳐 누워 있다던가 병석에 눕는 일이었다. 그래서 서씨는
남편을 일생동안 모시는 동안 남편의 취미와 건강을 샅샅이 알
게 되어 남편이 몸살이 났을때는 어떠한 방법으로 치료하면 되
고 남편이 감기에 들었을때는 어떻한 방법으로 치료하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승은 정사때 몸이 괴로우면 집에
와서 어딘가 불편하다고 하면 아내 서씨가 알아서 치료를 해주
는 그런 아내였다한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여러대감들이 서씨
를 한의라고 수문이 날 만큼 널리 알려져었다. 기로소에 들어
간 남편의 뒤치닥거리에 온 정신을 바치는 서씨도 늙은 자기 몸
보다 남편의 몸에 더욱 신경을 써서 항시 남편의 얼굴을 보고선
여러가지 약을 때때로 선택해서 주곤하여 남편은 건강을 유지했
었다. 그런 세월이 얼마 흐르다가 남편은 노환으로 일찍 죽었
다. 남편 조정승이 죽자 그녀는 작기 의 정성이 부족해서 자기
보다 일찍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성통곡을 하다가 남편
이 죽으면 자기의 목숨도 필요없는 것이니 죽어야 겠다고 생각하
고 자기 앞에 자녀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이제는 너희들도 자라
서 스스로 갈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 세상사에임하라
고 말하고선 목숨을 끊으니 서씨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고종 임
금은 한국의 안내로서 어머니로서 귀감이되는 서씨에게 정문을
내리며 경기도 양주에 있던 묘도 명당이 있는 자리에 옮기라하
여 지금의 청양군 화성면 용당리에 옮기게 되고 이곳에 열녀 서
씨의 열녀문을 세우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