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극인 ▶황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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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9-30 | 조회 | 1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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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를 살아온 황철은 강한 민족의식을 갖는 연극인으로 유
명하다. 황철은 청양군수를 역임한 황우정 군수의 아들로 청양에서 태어 나 어린시절을 보냈고 춘천고보를 졸업했으며 청년시절에는 운전 사를 꿈구며 합승차 운전사로 일했으나 교통사고가 나면서 피신 하기 위해 유랑극단에 들어간 것이 인연이 되어 연극에 뛰어들었 다. 청춘난영이라는 작품의 주연배우가 돌발사고로 대역을 맡은 것 이 동기가 되어 주연급 배우 반열에 오르는 행운을 얻었으며 35 년 동양극장이 설립되면서 황철은 청춘좌로 스카웃 됐고 "사랑 에 속고 돈에 울고"가 히트하면서 바야흐로 황철1인 독주시대 르 열어갔다. 당시 총독부에서는 극단에 어용극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갖은 회유가 잇따랐으나 이를 거절했다. 어떤 역이든 혼신을 다해 연가하는 것으로 유명한 황철이지만 당 시 어용극 "삼대" 를 공연하게 됐을때는 술을 먹고 무대에 오르 는등 심한 모멸감을 느겼으며 국책영화로 만들어진 "젊은 자 세" 라는 영화에 주연을 맡아줄 것을 강요받았음에도 끝까지 거 절하다가 어렵게 사는 극단원 전원의 급여 지급 받는 조건으로 승낙하기도 했다. 해방이후에도 황철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낙랑극회, 봄밤 의 사나이, 춘향전"등의 주연을 맡아 한시대를 이끌어 갔다. 애당초 황철은 연극하는 사람은 정당인의 하수인이 되면 안된다 며 좌,우익 어느쪽에도 기울지 않고 주관대로 행동했다. 그러나 당시 죄익의 끈질긴 요구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행사 에 참가한 것이 연유가 되어 좌익에 몸담았고 이후 월북하여 인 민배우로 활동하다 불행한 최후를 맞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살아간 족적과 예술혼은 한국연극계의 거봉으로 남 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