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메뉴 닫기
서브페이지 배경
효자 ▶최승립 ▶대치면 농소리 게시판 상세보기

[청양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효자 ▶최승립 ▶대치면 농소리
작성자 청양문화원 등록일 2002-10-02 조회 1071
첨부  
 
눈이 펑펑나리더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초가집 추녀가 금시
날라 가듯한 억센 바람이었다. 어머니 병환을 고쳐드리기 위해
70리길을 걸어서 유명하다는 한의를 찾아왔지만 어머니 병환엔
뱀의 간이 필요하다는 한의의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 진다.
엄동설한에 어디에 가서 뱀의 간을 구해야 하느냐고 그는 한의
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허나 한의는 태연하게 약제를 제시히고
선 돌아앉는다. 마치 당신 어머니의 죽음이 눈앞에 있소 하는 식
이다.
최승립은 묵묵히 일어나서 한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대문
을 나섰다. 바깥 바람도 차고 매서웠다. 그는 갓끈을 두터웁게
올려매고선 길로 나선다. 울때도 그랫지만 고개의 비탈진 길을
미끄러웠다. 그래서 마을 길가에 뒹구는 새끼 두어발을 주어서
훌훌 털고는 옆구리에 차고선 길을 채족한다. 그는 돌아오는 길
에 뱀의 간이 있지 뱀의 간이 있어야 어머니 병환을 고치지 그것
만을 생각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자기가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것
이었다. 그는 추위를 잊고 집에 까지 온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
며 어머니 방에 들려 병석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잠깐 들려서 위
로하고선 아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서는 위로 하고선 아내가 있
는 방으로 돌아와선 아내가 정성껏 차려다 주는 밥상을 앞에 놓
고 밥을 먹을 생각도 없이 뱀의 간 이야기를 한다. 아내와 아무
리 궁리해봐도 뱀을 잡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가을 서리가 내리
기 사작하면 뱀은 겨울을 보내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간다 한다.
그는 생각했더니 땅을 파봐야겠구나? 헌데 어디에 가서 땅를 파
야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을 한다. 아니지 조선 팔도강산을 다
파더라도 뱀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만 밥수저를 두어번
움지이고 그자리에 쓸어진다. 그리고선 몸이 스스로 녹은 체온속
에 잠이 든 것이나 그는 잠이 들어서도 잠고대를 한다.
''뱀의 간... 뱀의 간...''
하다가 번쩍 눈을 뜬다. 그러다가 또 잠이 든다 그렇게 해서 잠
시 눈을 붙이더니 벌떡 일어나서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선 그때부
터 꼬박 밤을 새우는 것이다 어머니도 몹시 괴로웠지만 아들의
정성에 감동 되었는지 괴로워도 신음소리를 내지 못한다.
어느 듯 날이 밝아왔다. 그는 방문에 비치는 환한 노을을 바라
보다가 문을 열고 나온다. 그는 뒷마당에 거서 한번 뱀을 본것
같은 뒷마당 나무 아래를 파봐야갰다고 삽자루를 들고 뒷마당에
들어섰을때다 그는바람에 휘날리는 눈송이가 차거워서 언듯 옷
을 털며 위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나무가지에 생생한 뱀이 하
나 걸쳐져 떨어질려고 매달려 있는게 아닌가! 그는 자기 눈을 의
심하며 그 뱀가까이 갔다. 틀림없이 뱀이 도사였다.
그느우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뱀을 잡아서 어머님에게 약을
해 드렸더니 어머니가 기동을 하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본
그는 자기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우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효자로서의 울음이었다.
그는 어려을때부터 남달리 효성이 지극했었다. 어렸을때에도 부
모님이 조금만 병석에 누워도 밥도 먹지 앟고 사방으로 뛰
어다니
며 약을 구하러 다녔고 항시 뒷마당 큰 고목나무 아래에 정화술
를 떠놓은 다음 부모님의 병환이 있을때는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
의 완쾌하기를 빌었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그를 효자라고 칭찬
하였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어려서도 그는 이렇게 대답
했었다.
자식이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효자라고 볼수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아끼고 존경하는 것은 자식을 낳아준 부모님께
할 일을 하는 것에 지나기 않습니다. 이세상에 효자가 어디 있습
까? 아무리 자식이 부모에게 정성을 다 한들 자식을 낳아 준 공
만 하겠스니까!
그는 참으로 효자였다. 그의 부모가 연로해서 돌아가시자 그는
묘앞에서 3년동안 정성을 다 바쳤습니다. 아무리 자식이 부모에
게 정성을 다한들 자식을 낳아준 부모의 은덕만 하겠느냐는 그
의 효시을 그래서 전국에 널리 알리게 되었다. 마침 왕께서도
이 소식을 듣고 그에게 정문을 나리니 처음은 그 정문을 예산군
광시면에 세웠던 것을 서기 1812년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여
기 농소리로 옮겨 세웠다. 관직에 있을때도 틈만 있으면 부모님
곁에 가서 그날의 부모님 표정을 살폈다한다. 부모님 얼굴이 어
두우면 자기 얼굴도 어두웠고 부모님 얼굴에 웃음이 있으면 자기
도 웃으며 즐거워했다는 최승립 그는 하늘에서 보낸 효자였다 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