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두레와 품앗이.고지 ▶대치면 대치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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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4-16 | 조회 | 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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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의 시기와 기간
두레는 주로 논매기 때에 이루어졌다. 논매기는 3벌을 매는데 아시매기. 두벌매기. 만물매기(세벌매기)를 한다. 두레는 세벌 매기인 만물매기때에 이루어진다. 두레의 기간은 보통 5-10일 정도이다. ▶두레꾼의 참여 두레는 남자 중에서 17세 정도부터 45-50세 정도까지 참여하였 다. 이 나이에 해당하는 두레꾼 중에서 1가구에 1명씩 참여하 였다. 따라서 여러명이 있는 집에서는 교대로 두레에 나오기 도 하였다. ▶작업시간 오전 7시경에 시작하여 오후 7-8시에 끝나며 경우에 따라 일 이 일찍 끝날 경우에는 6-7시에 마치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아 침마다 아래의 정자나무에 집결하여 풍장을 우리면서 논매기 를 하러 떠났다. ▶식사와 간식 아침은 집에서 먹고 나오고 점심도 각자 준비한다. 따라서 각 가정에서 점심을 준비해서 내 오는 경우가 많다. 다만 논 의 주인은 새참으로 오전과 우후에 각각 보리술을 내 놓으며 마늘과 고추장 등을 안주로 내 놓는다. ▶두레기금 두레를 할 때에 논의 임자는 논의 크기에 따라 돈이나 쌀을 내 놓는다. 곧 1마지기 당 얼마씩 동등하게 계산해서 내 놓는 다. 이 돈은 마을의 기금으로 사용한다. ▶두레싸움 일제 시대에 두레가 있을때에는 아래의 광대울 마을과 두레싸 움을 했다. 두 마을의 두레패가 만나면 서로 깃대로 인사를 하 라고 요구하며 시비가 붙는다 나중에는 두 마을의 풍장패가 서로 어울려 노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두레 소멸 시기 해방 전인 일제 말기에 약화되어 해방 후에는 실시하지 않았 다. 당시 두레가 약화된 이유는 이제의 징용, 군대 징집, 타지 이주 등에 의한다. 당시 7-9가구 정도가 본토에 징용으로 끌 려갔다. 그리고 타지에 이주한 사람도 여러 집이 있었다. 당시에 살기가 어려워 전쟁 초기에 몇 흡의 배급을 받았으나 나중에는 쌀을 구경도 못했고 심지어는 썩은 콩깻묵으로 연명 을 했다. 이로 인해 두레가 약화되었다. ▶품앗이 모내기 할 때에는 돈을 주고 품을 사거나 품앗이를 했다. 특 일부에서는 두레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를 제대로 심지 못한 다 하여 두레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고지 30년전까지 고지가 있었는데 이것은 어려울때에 쌀을 미리 빌 려 쓰고 나중에 일로 갚는 것이다. 고지에는 2가지가 있는데 쌀 5되를 빌릴 경우에는 ''심는고지''라 하여 모내기를 할 때 에 참여해서 일손으로 갚는다. 그리고 살 2말을 빌릴 경우에 는 ''잔고지''라 하여 모를 심는 일에서부터 바슴(수학)할때까 지 일손으로 갚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