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민속놀이 ▶ 집단놀이 →청양의 두레싸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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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5-23 | 조회 | 7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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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면 대치리의 두레싸움
일제시대에 두레가 있을 때에는 아래의 광대울 마을과 두레싸 움을 했다. 두 마을의 두레패가 만나면 서로 깃대로 인사를 하라 고 요구하며 시비가 붙는다. 나중에는 두 마을의 풍장패가 서로 어울려 노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대치면 대치리, 염태섭) ▶청남면 인양리의 두레싸움 제보자가 어릴 때에 두레싸움이 있었다. 나무 잘 타는 사람이 상대의 ''깃목''을 빼앗으면 이기게 된다. 이것은 상대의 목을 베는 것과 같다. 곧 목을 빼앗겨 가지고 가지 못하게 된다. 만약 깃목을 빼앗기면, 기를 가지고 가지 못하고 버리고 가야 한다. 서로간에 치고 받기도 하고, 농악을 다루어서 승패를 결정하기 도 하였다. 이곳 두레가 크기 때문에 다른 부락의 두레가 감히 덤비지 못한다. 풀물(풍장)을 쳐서 그 실력으로 승부를 내기도 한다. (청남면 인양리, 김명하) ▶정산면 남천리의 두레싸움 두레 때에 이웃 마을과 두레싸움이 있었다. 남천리에서는 새터 울(안모동) 두레, 새울 두레, 굴티 두레가 있었으며, 이곳 봉현 리에서는 인군의 묘제 두레와 두레싸움을 벌였다. 두레 할 때에 풀물을 치면서 나가면, 이웃 마을의 두레와 마주 친다. 이때 자진마춤으로 치면서 상대에게 ''기문 열어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상대의 3가닥 기줄을 끊으면 싸움이 벌어진 다. 두레싸움은 두레가 중지되었던 시기인 60여년 전(제보자가 10 살 전후)인 일제 말기에 소멸되었다. 따라서 전쟁 이후에 두레 가 일시 복원되었으나, 두레싸움운 복원되지 않았다.(공주시 우 성면 보연리, 김원중) ▶목면 본의1리 무수동의 두레싸움 약 40년 전까지는 논매기 두레를 하다가 이웃 마을과 두레싸움 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마을은 인근의 안심리, 마근동과 주로 싸웠는데, 특히 안심리와 깃발싸움을 많이 했다 한편 칠월이 되어 두레일이 다 끝나면 칠석 쯤에 ''두레먹는 다''고 한잔씩 술을 마신다. 이 날 논매기한 논의 크기에 따라 한 미지기에 얼마씩 돈을 걷는다. 자기 동네에서 두레먹으면 이 웃 동네 사람들을 청해서 같이 먹는데, 보리술을 먹고서 서로 술 에 취해서 싸움을 한다.(목면 본의1리 무수동, 김홍식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