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민속놀이 ▶ 청남면 지곡리 ▷ 횃불쌈놀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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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8-10 | 조회 | 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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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쌈 놀이는 패싸움으로도 불리우던 민속놀이로 지금은 충청남
도 청양군 청남면 지곡리(芝谷里), 내직리(內直里)에 전해오는 싸움놀이지만 옛날에는 두능윤성(豆陵尹城)아래 부근에선 자주 있었던 민속놀이로 전해 내려오는 민속놀이이다. 특히 지금은 공주군 탄천면 금강변 일대에서도 전해오는데 횃불 의 융성은 마들을 밝고 튼튼하게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므 로 많은 부락에서 즐겨 놀이하던 민속놀이다. 횃불삼놀이의 뿌리는 백제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군사들 의 사기를 고무시키기 위하여 많은 백제군사들이 운집해 있었던 정산의 두능윤성에선 때때로 동서로 나누어져서 군사들이 횃불쌈 놀이를 했었다 한다. 밤을 한낮처럼 밝히고 햇불을 들고 서로 적진으로 뛰어들며 횃불 을 빼앗고 장수가 자리한 진영에선 횃불을 던지며 싸우다가 왕 햇불을 빼앗는 것으로 끝을 맺는 이 놀이는 위험성을 내포한 놀 이라고 하겠다. 충남 지방에서는 가장 융성했던 고려때부터 이조때까지라 한다. 처음 시작은 군사들의 놀이로 시작되었으나 차츰 마을 청년들의 놀이로 변하여 매년 보름날 저녘에 마을과 마을사이에 베풀어졌 던 놀이다. 횃불쌈놀이는 매년 정월초에 서로 약속을 하게 된다. 몇일날 몇 시에 우리진은 어느곳에 지을 치겠다고 말을 하면 우리 마을도 어디에 진을 치겠다고 약속이 되고 이긴편에서 술 몇말과 떡 몇 말을 받는다는 약속도 이루워지면 그날부터 두 부락은 적으로 갈 라져서 햇불을 만든다. 횃불은 대마(大麻)대나 수수광이대로 만 드는데 불이 오래 타도록 만들기 위새선 대마대나 수수광이대를 바싹 말려서 추린 다음 횃불을 만들때에는 물을 축인 새끼로 총 총 묶으며 횃불대 사이사이에 사기 그릇 깨진것을 곱게 빵구어 서 그 가루를 횃불대 속에 넣는다. 햇불에 불을 붙이면 횃불이 쉬 불에 탐으로 잘타지 않도록 하기위해서 새끼에 물을 많이 묻 혀야 한다. 또한 햇불대 속에 사기그릇 깨진 것을 빵구어 가루 를 넣는 것은 횃불을 흔들며 적과 싸울때 그 가루에 불이 닿으 면 화약처럼 불이 뛰어나와 적을 위협함으소서 횃불대을 만드는 데 많은 공을 드리게 된다. 싸움이 시작되는 날은 마을에서 젊은이들이 장수를 뽑고 지형을 살핀다. 횃불싸움때마다 정면으로 싸움을 시작했다가 항시 역 습을 당한 마을 청년들은 장수대를 지키는 날쌘 젊은이를 골라 서 장수대를 지케게 하고 힘이 강한 젊은이들은 몇몇 대를 짜서 정면으로 보내면서 그들에겐 눈을 속이기 위해서 햇불대를 두개 씩 갖게 하고 적진으로 숨어서 둘어가는 젊은이들은 횃불대를 가 늘고 길게 만들며 횃불대 속에 단단히 참나무를 넣어 만든 다음 시 불타게 한다. 싸움이 시작되는 정월 대보름날 달이 한참 더 오를때 마을사람들은 횃불싸움 놀이를 구경하기위해 낮에는 산으 로 올가거나 강뚝에 자리하고 이윽고 한쪽에서 북소리가 들리고 농악소리가 한참 들린다. 농악소리가 끝나고 야유소리와 환성 이 한참들리다가 크게 북소리가 울리면 건너쪽에서도 북소리가 들리며서 횃불이 적진으로 몰려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서로 맞 부딪쳐서 횃불을 휘두르며서 적의 햇불은 한쪽 손으로 뺐는 싸움 이 시작된다. 홰불에서 불이 튀고 환성소리가 여기저기서 둘리 다보면 횃불은 한쪽으로 몰려가고 싸움은 더욱 치열해진다. 작 은 횃불이 도깨비불처럼 왔다갔다 하다가 한참만에 작은 횃불은 작아지고 큰 횃불에 불이 붙으면 승리 한편에서는 환성이 터지 고 횃불이 한쪽으로 달려오면서 마을 사람들과 밤새 홰불놀이의 여담을 하면서 잔치를 베풀게 된다. 홰불싸움놀이는 동군 서군으로 나누워서 싸운다. 대개의 경우 수문경(守門兵)은 큰 횃불을 지키고 그 앞에 원형을 그어서 군 사가 두르고 그 앞으로 이렬로 군사들이 선다. 앞에 잇는 군사 옆으로 양평에 운집하는 군사가 있는데 이 군사는 첩병이 부르 는 군사로 마을에서 날쌘 군사로 두패로 나누다. 싸움놀이는 기절할 만큼 극렬하며 떼로 몰려다니며 싸운다 해서 (패싸움)이라고도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