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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신앙▶산신제 ▶화성면 구재리(어재울 산제) 게시판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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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민간신앙▶산신제 ▶화성면 구재리(어재울 산제)
작성자 청양문화원 등록일 2003-03-03 조회 572
첨부  
 
【화성면 구재리 어재울 산제】

▶소재지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구재리 어재울

▶형 태
어재동의 평강 채씨 문중에서는 일제 강압기인 1994년까지 8
대(약 240년 정도)째 동산제식으로 산제를 지냈다. 그러다가
살기가 어려워지자 동네에서 산제를 지내게 되었다.
옛날에는 어재동에 채씨가 120호 가량 살고 있어서 다른곳에
서 온 사람들이 "예가 서울이냐?"힐 정도로 마을 사란들이 많
았고 마을도 컸다고 한다. 당시에는 음력으로 정초에 좋은 날
을 잡아서 지내오다가, 해방 이후부터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
흘에 지내고 있다. 채씨 문중에서는 산 중턱에 나무로 산신당
을 짓고 그 아래의 액간 떨어진 곳에 외부와 접척을 하지않고
기거할수 있는 건물을 따로 지었다. 그러다가 1974~79년경
에 산신당내에 있던 탱화와 건축연댜가 써있던 산신각을 도난
당했다.
"예전 탱화는 천에 호랑이를 색을 넣어 그렸는데 그냥보기만
해도 눈이 서게했어. 산신할아버지가 호랑이타고 근엄하게 있
는데 나무하다가도 그 근방엔 가질 않았어. 무서워서" 그 후
관리가 소홀하여 아래에 있던 건물이 쓰러져주저앉게되고
1979년에 위의 산신당만 다시 지었다. 지금의 산신당은 1979
년에 호당 성의껏 돈을 내서 마을 사람들이 다시 지은 것이
다.
당시 산에서 나무를 베고 벽돌은 사서 인력으로 짊어지고 올
라 와서 정성껏 산신당을 지었다.
마을 사란들은 ''''어재동 산신당''''이라고 부르며 ''''여
성당''''이라고 한다.
1994년 1월에 올라가 본 산신당은 마을에서 바라보아 북동쪽
을 향해서있고 오서산과 마주 바라보고 있다. 직사각형모양
의 산신상(크기"가로 414Cm(부엌포함),세로28Cm)은 양철지
붕에 작은 통나무를 대어 받치 후 흙을 바르고 시멘트벽과 연
결해 놓았다.
마을을 향한쪽에 양철문(크기:가로91Cm,세로142Cm)이 나있
고 그 문을 열면 산신옆에 호랑이가 그려져있는 탱화가 보이
고 제기가 보관되어 있다. 탱화는 대천에서 그림 잘 그리는
사람에게 의뢰를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양철문 옆으로 부엌(가로:177Cm)이 있다. 부엌문이 따로 없
고 산신당 쪽을 향해볼때는 아궁이가 허름하게 나있다. 그 뒤
로 나무가 쌓여있고 사다리가 있다. 산신당과 약 3m떨어진 곳
에 우물이 있다.
마을사란들이 자꾸 떠나 사람수가 줄자 1994년에는 어재동과
구수동이 함께 산제를 지냈다. 산신령을 위하고 일년동안
마을사람들이 무사히 잘 보낼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에서 지내
며, 마을사람들이 간절한 염원이 담겨져있다.

▶의 례
▷제의명칭 : 산제

▷제의시기 : 음력 정월 초사흘

▷제관선정
제일 약 열흘 전에 나이와 그 해의 생기복독이 닿는 사람을 선
정한다. 제관과 짐꾼. 음식을 하는 여자 2명이 선정된다. 어
재동에서는 주로 윤덕헌씨(남,60세)가 생기복덕을 봐주고 있
다.
제관을 마을사람들은 ''''제관''''또는 ''''주당닿은
분''''.''''생기복덕 닿은분''''이라고 부른다. 선정된 제
관은 제일 사흘전부터 삼일동안 바깥출입을 삼가하고 찬물로
목욕제개를 한다. 또 부부간에는 삼일동안 함께 잠을 자지
않는다.

▷비 용
60년대 까지 걸립으로 충당했다. 돼지를 잡아놓고 ''農者天下
之大本''이라써있는 마을깃대를 높게올리며 풍장을 치면서
집집마다 쌀을 새 되씩 걷었다. 이때 임신했거나 상을 당했거
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의 돈은 부정한다고 해서 걷지 않았
다. 그러다가 새마을 사업후 70년대 초반으로 접어들면서 마
을공동기금으로 제비를 충당해오고 있다. 제비는 약 20만원
이 채 못되게 소요된다.

▶제 물
▷장은 제일 이틀전에 청양 읍내에 있는 시장에서 본다. 이장
과 반장, 제관이 깨끗한 옷차림으로 함께보러간다. 제물은
포,대추, 통밤, 사과, 배, 김, 초, 만수향을 준비한다. 이
때 조심해야할 것은 상가집에는 절대 가지 않고, 부르는 데
로 물건값을 다주며, 깨끗하고 흠집이나지 않은 과일로 골라
야한다는 점이다. 특히 통명태는 눈이 조금이라도 상한것은
사지않고 눈이 생생한 것으로 산다. 제물을 일단 사면 땅바닥
에 내려놓지 않고 조심스럽게 제관집에 가져다 놓는다.

▷금 기
제일 삼일전인 섣달 그믐부터 마을입구 정자와 두 개의 선돌
에 금줄이 쳐진다. 마을 반장이 금주레 길게 오려 붙인 길지
와 고추,숯을 끼워 매단다. 솔잎은 꽂기도 하고 않꽂기도 한
다.
금줄은 차가 들어와도 걸리지 않을 만큼 높게 달며, 이것은
부정한사람이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에서 행해진다.
또 제관집 대문에도 금줄을 쳐서 부정한사람과의 접촉을 금지
시킨다. 마을 사람들도 제일 삼일 전부터 닭이나 이조차도
못잡게 한다.

▷제의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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