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풍장 ▶장평면 미당리 풍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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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3-03-03 | 조회 | 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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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농악을 원래 "풍장 친다"라고 하였다. 근래에 들어서 농악이라는 명칭을 썼다. 두레 할 때를 비롯하여 칠성제, 장승 제, 백중, 추석 그 외에 크고 작은 마을 행사 때에 쳤다. 두레 는 없어졌어도 풍장은 약하게 나마 지속되었다. 요새는 젊은 부 녀자들이 많이 치고 악기는 마을회관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예전에 아이들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지게 작대기로 지게를 치 면서 풍장을 치는 흉내를 냈다. 이것을 "작대기풍장"이라고 한 다. 주로 아리랑 타령 노래를 부르면서 놀았다. 작대기 풍장을 할 때에는 입으로 "갱갱" 하는 꽹과리 소리를 내며 놀았다 ▶두레풍장 "두레 매긴다"라고 한다. 마을 270호에서 각 집마다 한 명씩 참여하였다. 두레의 제일 어른을 "공좌산"이라고 하였고 그 다음 은 "공원"이라고 하였는데 하는 일은 일으 지시하는 역활이었 다. 농기를 앞세우고 200명이 넘는 엄청난 큰 규모였다. 이 근방 에서는 가장 크게 두레를 하였다. 모심기할 때는 기간이 3달이 걸렸는데 (4-6월)개인적으로 이웃사촌끼리 품앗이의 형태로 진행 하였다. 김매기는 아시매기, 두벌매기, 세벌매기 이렇게 세 번 을 했다. 두레매길 때는 계산을 하였는데 한 마지기에 2만원 정 도로 돈을 모았다. 놀고 나면 마을 기금으로 쓰였는데 결산해 보 면 매우 큰돈이 되었다. 따로 돈을 관리하는 사람이 이었다. 모내기를 할 때에 두례풍장이 이루어진다. 이때네는 장구만 치 는데 이를 "목방구 친다"라고 하였다. "어야듸야 상사듸야"라고 매기고 받고 노래를 불렀다. 두레를 할 때는 사물(쇠, 장구, 북, 징)을 다 친다. 김매기 중에는 처음 매는 시기엔 초벌매기 때에만 풍장을 쳤다. 두레가 없어진 지 20년이 넘었다 ▶지신밟기 "지덕 눌른다"라고 하였다. 지신을 위한다고 생각했다. 집집마 다 지덕 눌러 달라고 요청을 해왓다. 장승제를 지낼 때는 정월 열나흗날, 보름날 양 일간 지덕을 눌렀다. 정월 이외에 어떤 날 이라도 요청이 들어오면 지신을 밟고 놀았다 <장평면 미당리 서기복, 김평길> -청양의 민속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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