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두레 ▶대치면 대치리의 두레와 두레싸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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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3-03-05 | 조회 | 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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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싸움 일제시대에 두레가 있을 때에는 아래의 광대울 마을과 두레 싸 움을 했다. 두 마을의 두레패가 만나면 서로 깃대로 인사를 하라 고 요구하며 시비가 붙는다. 나중에는 두 마을의 풍장패가 서로 어울려 노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두레의 시기와 기간 두레는 주로 논매기 때에 이루어졌다. 논매기는 3벌을 매는데 아시매기, 두벌매기, 만물매기(세벌매기)를 한다. 두레는 세벌매 기인 만물매기 때에 이루어진다. 두레의 기간은 보통 5-10일 정 도이다 ▶두레꾼의 참여 두레는 남자 중에서 17세 정도부터 45-50세 정도까지 참여 하 였다. 이 나이에 해당하는 두레꾼 중에서 1가구에 1명씩 참여하 였다. 따라서 여러 명이 있는 집에서는 교대로 두레에 나오기도 하였다 ▶작업시간 오전 7시경에 시작하여 오후 7-8시에 끝나면 경우에 따라 일 이 일찍 끝날 경우에는 6-7시에 마치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아침 마다 아래의 정자나무에 집결하여 풍장을 울리면서 논매기를 하 러 떠났다 ▶식사와 간식 아치은 집에서 먹고 나오며 점심도 각자 준비를 한다. 따라서 각 가정에서 점심을 준비해서 내 오는 경우가 많다. 다만 논의 주인은 새참으로 오전과 오후에 각각 보리술을 내놓으며 마늘과 고추장등을 안주로 내 놓는다 ▶두레기금 두레를 할 때에 논의 임자는 논의 크기에 따라 돈이나 쌀을 내 놓는다. 따라서 1마지기당 얼마씩 동등하게 계산해서 내 놓는 다. 이것은 마을의 기금으로 사용한다, ▶두레 소멸 시기 해방 전인 일제 말기에 약화되어 해방 후에도 실시하지 않았다 당시 두레가 약화된 이유는 일제의 징용, 군대 징집, 타지 이주 등에 의한다. 당시 7-9가구 정도가 본토에 징용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타지에 이루한 사람도 여러 집이 있었다 당시에 살기가 어려워서 전쟁 초기에 몇 홉의 배급을 받았으 나 나중에는 쌀을 구경도 못 했고 심지어는 썩은 콩깻묵으로 연 명을 했다. 이 일로 인해 두레가 약화되었다 ▶품앗이 모내기 할 때에는 돈을 주고 품울 사거나 품앗이를 했다. 특 히 모내기를 할 때에 주민 중에는 잘못 매는 사람이 있기 때문 에 두레를 하지 않았다 (대치면 대치리 염태섭) -청양의 민속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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