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민간신앙▶산신제 ▶비봉면 관산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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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3-03-18 | 조회 | 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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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면 관산리 산제】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 관산리 ▶형태와 위치 ▷형 태 제단의 형태였던 것을 1930년경에 초가지붕의 제당을 지었다 가 1973년에 함석지붕을 짓고, 1987년에 기와지붕으로 개량하 였다. 산신도는 대전으로 사다가 걸어놓았다. ▷위 치 : 마을 뒤 ‘안산’중턱 ▶의 례 ▷제의 명칭 : 산제 혹은 ‘산제잡숫는다’라고 한다. ▷제 의 음력 정월 초 닷새에 제를 지냈으며 동네 부정 있음 연기하였 다. 동네 초상이 나면 연기를 했으며 옮긴 적이 많다. ▷제 관 음력 섣달 그믐이 되면 마을 사람들 중 몇 명이 모여 제관과 축관, 도가 내외 짐꾼을 뽑는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도가 라 하며 제관은 첫잔은 첫잔에 술 따르는 사람이다. 짐 지고 올라가는 사람은 짐꾼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선정이 되면 아무 리 찬물이라도 목욕제계를 하고 부정한 것을 안 보도록 노력 을 하며 바깥출입을 자제한다. ▷제 물 고기는 올리지 않으며 말린 북어만 올렸다. 돼지머리는 6~7년 에 올리게 된 것이 동네가 살기가 어려워서 못 올렸으나 요새 는 살만해져서 올리게 되었다.제물을 미역으로 쓰는 이유는 바 란내 안 나서 해산물 대신에 쓴 것이다. 삼색과일(밤, 대추, 곶감, 배)을 제물로 올린다. ▷제의 절차 제사 지내는 날 아침에ㅔ 도가는 산제당을 청소를 한 후에 제 당에 있는 제기를 가지고 와서 저녘에 도가집에서 쌀로 백무리 를 찐 후에 해가 지면 제물을 지게에 지고 산제당에 올라간 다. 산제당에 도착하면 산제당 옆에서 밥을 짓는다. 제물을 진 설한 후에 술 올리고 재배한 후에 독축을 하고 재배를 올리고 술잔을 다시 올린 후에 재배하고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제의 는 끝이 난다. ▷비 용 산제계는 70년 전에 생겼는데 그전에는 산제사 기본 재산이 없 어서 유력자 몇에게 돈을 걷어 제사하다가 어려워서 호당 쌀 반말씩 동네사람들이 걷었더니 당시 가구수가 60호가 되어서 쌀이 3~4가마가 되어서 그것을 농협에 맡겼다가 제사를 지낸 다. 지금은 농협에 맡긴 것이 돈이 되어 산제 충당이 가능함. 백지, 과일, 쌀2말, 북어, 술 정도만 사서 돈이 별로 들지는 않는다. ▷소 지 산제 때 소지를 올리는데 관산리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고 가 람모두 올려준다. ‘가람’은 녹평리, 강정리, 장재리, 관사리 를 일컫는 말로 소지도 같이 올린다. ▷기 타 살기 좋은 마을로 지정이 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이사를 오는 상황이다. 작은 동네에 다리가 6갸가 있을 정도로 주민복지를 염두에 둔, 살기 좋은 동네다. 전쟁중에도 제는 빠지지 않고 지냈다. 마을 사람들은 전쟁때 나가서도 손톱하나 다치지도 않 았는데 이것은 산에서 나오는 복이 많았기 때문이다. 관산리 는 산이 많다는 의미이고 옛날에는 야수가 많았다. 이 제는 호 랑이나 늑대 같은 짐승과 뱀이 없게 하고 전염병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이며, 비 잘 와서 풍년들고 동민들이 건강 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이다. 산제를 지낸 후에 산 피해를 본 적 이 없다고 한다. -(비봉면 관산리, 김동준)- 칠갑문화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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