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을신앙▶거리제(용왕제)▶청남면 왕진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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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3-03-25 | 조회 | 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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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면 왕진리1구 장현 샘굿】 ▶마을 개관 ▷개 요 현재 65가구이나, 50~60년대에는 80호가 넘었다. 왕진 1구와 2구에서 호별로 따지다 보니까 송상과 해동마을의 2구로 떨어 져 나갓으며, 오히려 거리가 먼 창현하고 왕진마을이 1구로 합 쳤다. 마을 건너편에 정고개가 있었다. 절이 있었기 때문에 생 긴 이름으로 현재 같은 부락이다. 6.25직전(김용구 제보자 11세 때)의 병술년에 동네다 침수되 어 큰 피해를 입었다. 이 마을은 예전부터 물이 많이 나서, 수 침골(침수골)이라고 불렀다. 예전에 마을 강가는 백모래가 매우 좋았다. 예전에 모래가 좋 아 해수욕장보다 더 좋았다. 그런데 근래에 3만평의 골재를 채 취하면서 크게 훼손 되었다. ▷마을 유래 동국여지승람에 ‘왕지진(王之津)’이란 지역이 나온다. 임금 와(王), 갈지(之), 나루진(津)이라해서 왕지진이라고 한다. 이 곳은 임금이 왕래하던 곳이다. 동네 앞에는 독쟁이 나루가 있 었다. 이 나루터가 백제시대의 가마터였다. 백제기와를 운반했 던 곳으로, 당시 기와가 출토된 적이 있다. 이 마을 전체의 현재 왕지진인데, 오래된부터 사용하던 이름 은 창현이다. 창현은 예전에 근처에서 나는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곡식을 창고에 보관했다 가 배로 운반했다. 창고개라고 하면 이 근방에서는 오르는 사 람이 없었다. 한편 이웃 원왕진에는 몽루정(夢樓亭)이라는 목재로 만든 정자 가 있었다. 이것은 상하체로 된 큰 정자였다. 그런데 70년대 에 해체하여 강건너 창원 황씨 집안의 재실을 지을 때 사용하 였다. 그 정자가 있었던 곳이 경치가 매우 좋았다. ▷독정 나루 예전에 나루가 있던 곳을 ‘독쟁이’리고 했다. 현재 나루는 폐지되었다. 나루가 있던 시절만 해도 주막이 3~4집이 있었 다. 나루가 폐지되니까 주박도 없어졌다. 나루가 있던 곳에 정 자가 있었다고 한다. 독쟁이가 지금 관광지보다 더 멋있었다. 그 밑에 정자나무가 서 있었고 느티나무와 버드나무 등이 숲속을 이루고 있어서 운 치 있었다. 제보자가 어린 시절인 해방 후에, 그 곳으로 길이 나 있었다. 그런데 6.25직전의 병술년 부렵에 홍수가 나서 쓸 려 내려갔는데, 당시 회관 정자나무에까지 물이 찼다. 당시에 는 지금처럼 강둑이 없었다. 그 후에 길이 몇 번 더 떠내려 갔 다. 그래서 집들이 지금 있는 데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현재 마을은 군에서 문화마을로 지정되었다. 그래서 마을 샘제 를 지내는 샘도 정화하였고, 마을 길 옆에 보건소도 유치하였 다.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청남면 왕진리 1구 ▶형 태 마을 중앙에 공동으로 사용하던 샘이 있다. 물의 깊이는 10미 터 정도이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지난해에 군에서 문화마을로 지원을 받아 마을 샘을 깨끗하게 정리 하였다. 따 라서 우물 주위를 시멘트로 정리하고, 우물위에 뚜껑을 새로 씌웠으며, 기와로 지붕을 씌웠다. ▶의 례 ▷명 칭 마을에서는 원래 ‘유왕제’라고 했으며, 제사 지내는 것을 ‘유왕제 모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2001년에는 이 명칭을 용 왕제로 바꿨다. 제보자는 유왕제를 용왕제로 여기고 있으며, 유왕의 유는 ‘호를 유(流)’로 해석하고 있다.한편 기록에는 ‘샘굿’이라고도 한다. ▷제의시기 : 음력 정월 14일 날에 샘에서 제사를 지낸다. ▷제관 선정 도유사 1인에, 유사 10명 정도로 선정한다. 이들은 음력 정월 3일에 뽑는다. 도유사를 정하고 나서는 마을 기를 그의 집으 로 모신다. 유사가 하는 일은 제물을 준비하고 소지를 올리며 제사를 진행한다. 장을 보는 유사, 물을 푸는 유사, 풍장(농 악) 유사로 구분된다. 도유사가 초헌관이 되고 유사 중 하나가 아헌관, 종헌관은 유 사중에서 정해서 한다. ▷비 용 음력 정월 3일에 가가호호 방문하여 성의껏 돈을 걷는다. ▷제물 준비 제물에 필요한 제물은 유사가 중심이 되어 음력 1월 12~13일 에 부여장(5일, 10일장)에서 구입한다. 대략 30여가지를 준비 한다. 삼색실과와 나물로 고사리, 무우, 나물, 배추나물, 미역 국, 탕(소탕), 소지종이 20권, 성냥, 양초, 등을 준비한다. 장 을 볼 때에 물건값을 깍을 순 없다. 탕과 미역국 사이에 돼지 머리를 놓는다. 김에 밥을 싸서 북어에 묶어서 우물에 띄우는데, 이것으로 마 을의 무사태평을 빈다. 제물을 진설하는 방향은 원래 북향이었 으나, 요즘은 동향이다. ▷제의 과정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유사를 정하기 전에 걸립을 한다. 그래 서 필요한 비용을 추렴한다. 그리고 도유사를 정한 다음에 기 를 모신다. 음력 1월 14일 아핌에 우물의 물을 푸고 주위를 깨 끗이 청소 한다. 샘굿을 할 때는 샘 주위에 금줄을 친다. 그리고 유사 집에서부 터 우물까지 황토를 일정한 간격으로 놓는다. 금줄에는 창호 지를 꽂아 놓는다. 14일 오후 6시 30분경에 농악(풍물)을 치면서 주민들이 우물 에 다 모이면 유사가 제물을 진설하고 초를 켠다. 진설을 할 때에도 풍물을 치며 제사를 지낼 때에는 중지한다. 진설은 원 래 북향으로 진설했으나, 지금은 동향으로 제사를 지낸다. 술을 올릴 때에 도유사가 초현관을 한다. 유사 중에 두 사람 을 정해 아헌관과 종헌관을 한다. 술은 3번만 올린다. 술을 올 린 다음에 도유사가 축을 읽고 불 사른다. 이어 소지를 하는데, 유사들이 각 집안의 세대주들의 소지를 올려준다. 소지 종이는 약00매를 준비한다. 소지 대상자가 400 명이 되므로 여러 유사가 합심해서 올린다. 따라서 2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소지를 올릴 때에는 각자 속으로 축원 한다. 사람들이 모두 참여한다. 출향민일 경우 부모가 대리로 소지 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한편 제사를 지내는 동안에 호로병에 강물을 가득 채워서 뚜껑 을 솔잎으로 막는다. 그리고 우물 ‘우구지(위쪽)’에 나무를 가로질러 놓고 걸쳐 놓는다. 그리고 거꾸로 매달아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게 한다. 따라서 마르지 않은 샘이란 뜻을 지닌 다. 제사가 끝난 다음에 솔잎을 빼놓고 물을 모두 비운다. 한 편 제사 지낼 때에 북어를 우물에 묶어 띄우고 제사가 끝난 후 에 꺼낸다. 모두 세자가 끝나면 동네 사람들은 우물물을 제일 먼저 뜨면 좋다고 해서 서로 먼저 물을 떠가려고 한다. 한편 각 가정에서 는 개인적으로 시루떡을 하고, 우물의 청수를 떠다가 치성을 드리는 경우도 있다. 다음에 동네 주민들이 모두 모여 술을 한잔 먹으며 척사 대회 를 실시한다. 그 장소가 예전에는 도유사의 집에서 했는데, 요 즘은 회관에서 실시한다. 윷놀이는 예전에는 남자만 참여 했으 나, 지금은 남녀 모두 참여한다. ※첨부파일(전승실태, 산제기)을 참고 하세요~! -(청남면 왕진리 1구 창현 마을, 김용구)- 칠갑문화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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