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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읍 읍내리 ▶용배 외 7 게시판 상세보기

[청양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청양읍 읍내리 ▶용배 외 7
작성자 청양문화원 등록일 2002-03-15 조회 1214
첨부  
 

【읍내리(邑內里)】 

馬韓(마한)때 群落社會國家(군락사회국가)인 狗盧國(구로국)에
속해었다. 百濟때는 古良夫里縣(고량부리현)에 속했으며 靑正縣
(정정현)에 속했고 高麗(고려)때는 靑陽縣(청양현)에 속했으며
李朝(이조)때는 靑陽郡(청양군)에 속했고 李朝末葉(이조말엽)엔
靑陽郡 邑內(청양군 읍내)가 되므로 邑內里라 하였는데 1914年
行政區域(행정구역) 改革(개혁)때 邑內里(읍내리) 場垈里(장대
리) 安積洞(안적동) 隱泉洞(안천동)各一部(각일부)을 병합하여
邑內里(읍내리)라 하고 邑內面(읍내면)에 編入(편입)되었다가
1917年 面名改稱(면명개칭)에 따라 靑陽面(청양면)에 속했으며
邑 昇格(읍 승격)따라 靑陽邑에 속하게 되었다

▶용배
읍내리 북동쪽으로 자리한 마을을 <용배> 또는 <용바위>라 부른
다. 마을이 산 기슭에 자리해 있으며 한편에 劍岩(검암) 또는 칼
바위가 있고 마을 가운데에는 龍(용)의 머리를 닮았다는 龍岩(용
암)이 있는 마을이다.
龍岩(용암)에선 이무기가 龍(용이)이 되어 昇天(승천)하였다 하
여 용바위라 부르는데 바위틈에서 나오는 샘도 있고 용이 승천하
는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용배>또는 <용바위>라고 부른다.

▶옥터
지금 구청양 경찰서 옆으로 터가 있는데 이 터를 <옥터>라고 부
른다.이조때 靑陽縣(청양현)의 감옥이 있었던 터다.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아랫장터
지금의 청양군 산림조합 아래에 있는 터가 옛날에 장이 섰던 자
리로 <아랫장터>라고 부른다.

▶빙곳재
읍내리3구 북쪽산 기슭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빙곳재>라
고 부른다.
창들로 넘어가는 등성이에 자리한 마을인데 新羅 靑正縣(신라 청
정현)때부터 겨울에 어름을 저장하였다가 여름에 쓰는 氷庫(빙
고)가 있었다 하여 <빙곳재>라 부른다

▶고리섬들
읍내 남쪽에 있는 큰 들을 <고리섬들>이라고 부른다.
<환도> <고리도평> <고리평>이라고도 부르는데 아주 옛날에는 물
로 가득한 강이였다 한다.
그 강 가운데에 고리(環)은 같은 섬이 두개가 있었는데 고리같
이 생겼다해서 環島(환도)라고 불렀다 한다
또한 환도는 나라의 유배지 였는데 죄인들이 많이 유배되어 와
서 수영을 못하는 죄인들은 굶어 죽었다 하는데 그래서 죄인들
의 무덤이 있다 한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이상하게 물이 줄어들어 수십일이 지나자
들로 변해서 육지와 맞닿게 되어서 농경지로 변했다고 한다.
지금은 들로 변했지만 옛날에는 섬처럼 생긴 통뫼가 있는데 이통
뫼도 옛 모습대로 <環島환도>라 부르며 또한 <고리섬>이라고 부
르고 <고리섬>이 있는 들을 <고리섬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금에 와선<고리도평古里島坪>이라고 쓰기도 한다.
또한 일설로는 백제때 <古良夫里縣고량부리현>이 있었던 곳으로
<古良夫里들>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해서 <古里島坪>이라고 부르
게 되었다 한다.

▶용암사(龍岩寺)
<용바위>에 절이 있는데 이 절을 龍岩寺(용암사)라고 부른다.
1975년 상이용사회와 신문기자단의 발기로 추진되며 창건한 절이


▶창들
<고리섬들>아래에 있는 들을 창들이라고 부른다.
李朝(이조)때 倉庫(창고)가 있었다 하여 <창들>이라 부르는 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