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청양읍 군량리 ▶고군량골(古軍糧골) 외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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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3-28 | 조회 | 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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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량리(軍糧里)】 백제때는 古良部里縣(고량부리현)에 속했고 신라때는 靑正縣(청 정현)에 속했으며 고려때는 靑陽縣(청양현)에 속했었다. 이조때 는 靑陽郡(청양군)에 속해서 이조말엽엔 靑陽郡 邑內面의 지역으 로서 이조때 軍糧(군량) 倉庫(창고)가 있었으므로 <군량골> 또 는 <軍良洞군량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上九里 (상구리), 中大里(중대리),軍良洞(군량동) 일부를 병합하여 軍良 里(군량리)라 해서 邑內面(읍내면)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面名 呼稱(면명호칭)변경에 따라 靑陽面(청양면)에 다시 읍 승격에 따 라 靑陽郡(청양군) 靑陽邑(청양읍)에 속하게 되었다. ▶고군량골 <군량골> 서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고군량골>이라고 부른다. <군량골> 서쪽 산아래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이고 하늘만 보이 는 곳이다. <군량골>이라 부를 만큼 첩첩한 산에 가린 마을인데 옛날에는 孔氏(공씨)들이 많이 살았다 한다. <군량골>에서 오래된 마을임으로 <古君糧(고군량)골>이라고 부른 다 ▶구시터 <군량골> 남서쪽으로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구시터>라고 부른 다. 千馬峯(천마봉)아래에 자리한 마을인데 숯을 구어내는 숯구터가 많이 있었던 마을이다 ▶군량동(軍糧洞) <구시터>동북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군량동> <군량골> 이라고 부른다. 이조때부터 군량을 쌓아두었던 창고가 있는 마을이다 하여 <군량 동> <군량골>이라 불렀다. 옛날엔 토성이 마을에 자리했었다. 옛날의 구전에 따르면 고리섬에 물이 가득하면 이 마을을 통해 서 화성면으로 물이 넘어간다 하여 <무넘교>라고도 불렀고 마을 입구에는 배가 드나들었다 하여 <넉배>라고도 불렀다. <넉배>에서 산날등으로 토성을 쌓고 화성을 거처 대천으로 <군량 미>를 날랐다 한다. ▶천마봉(千馬峯) 軍良里(군량리)에 자리한 마을로 청양읍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 를 千馬(천마)봉이라 부른다. 천마봉 봉우리의 주위에는 성이 있고 성안에서 옛날에 수십채의 집이 있어서 마을이 형성되여 있었다. 甲牛年(갑우년)동학난때 洪成(홍성)까지 올라갔던 동학군이 이곳 에서 관군과 싸우다가 천마리의 말이(千馬) 죽어 말천마리를 묻 었다하여 천마봉이라 부른다고 전한다. ▶양지뜸 <군량리>양지쪽에 자리한 마을을 <양지뜸>이라 부르고 <양지뜸> 동남쪽으로 응달진 곳에 자리한 마을을 <음지뜸>이라고 부른다 ▶상구시터 <구시터>위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상구시터>라고 부른 다. <구시터>위쪽으로 마을이 자리해 있다 해서 <상구시터>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중구시터 <구시터>아래에 자리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중구시터>라 고 부른다. 옛날엔 <구시터> 아래로도 마을이 있어 가운데에 마을을<중구시 터> 또는 <中九洞(중구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