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청양읍 장승리 ▶여드재 외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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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3-29 | 조회 | 8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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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리(長承里)】 백제때는 古良釜里縣(고량부리현)에 속했고 신라때는 靑正縣(청 정현)에 속했으며 고려때는 靑陽縣(청양현)에 속했으며 이조때 는 靑陽郡(청양군)에 속했고 이조말엽엔 靑陽郡 南上面(청양군 남상면)의 지역으로서 장승이 서 있으므로 <장승거리> 또는 <장 승가>라 불렀으며 변해서 <장승개> 또는 <長浦장포>라 부르던 지 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마근동 구대리 심곡리 산수동 여치리와 방축동 군량동의 각일부의 읍내리의 송애리 일부를 병합하여 장 승리라 해서 읍내면 편입 되었다가 1917년 面名呼稱(면명호칭) 변경에 따라 靑陽面(청양면)에 그리고 후에 읍 승격(읍 승격)에 따라 靑陽邑(청양읍)에 속하게 되었다. ▶여드재 장승리에서 화성면 신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여드재>라고 부른 다. 옛날엔 이 고개에 도적이 많아서 고개를 넘을 때 80명의 사람이 모여서 고개를 넘었다 하여 <여든이재>라고 불렀었다. 고개 아래 마을도 고개 지명따라 <여드재>라고 부르는데 고개 아 래에 있다 해서 그리 부르며 <여드티>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구막이 <장승개>앞 냇가에 줄지어 서있는 소나무가 있는데 이 소나무 숲 을 <수구막이>라 부른다 ▶산수골 <마근골> 서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산수골> 또는 <山 水洞(산수동)>으로 부른다. 마을이 산이 높고 물이 맑은 곳에 자리했다 해서 <산수골> 또는 <산수동>이라고 부른다한다. ▶사직동(社稷洞) <장승개> 북동쪽 산에 社稷壇(사직단)이 있고 <사직단>이 있는 마을을 <社稷洞사직동>이라고 부른다. 이곳 사직단은 이조말엽에 밤나무로 만든 牌(편)를 세우고 사직 을 세워 토신과 곡신에게 춘추로 제물을 차려놓고 현감이 제사 를 지내며 한해의 백성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이다. 농민들이 농악을 울리며 제사를 지낸 다음 음식을 나누워 먹으 며 흥겨워 하는 잔치이기도 하였다. ▶마근골 <장승개> 북서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마근골>이라고 부른다. 지형이 막은 것처럼 생겼다 해서 <마근골> <마근동>이라고 부른 다 ▶날근터 <장승개> 북서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날근터>라고 부 른다. 옛날의 터가 남아 있는 마을이라 舊垈(구대)라고도 부른다 ▶기프실 <장승개> 서쪽으로 깊은 산골짜기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 기프실> 深谷(심곡)이라고 부른다. 깊은 산골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해서 <기프실> <深谷>이라고 부른다. ▶장승개 <마근골> 동남쪽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장승개> <장승가> <장포> <장승거리>라 부른다. 마을에 장승이 서 있다 해서 <장승개> <장승가> <장포> <장승거 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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