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치면 대치리 ▶한티고개 외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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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5-01 | 조회 | 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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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리(大峙里)】 百濟(백제)때는 古良夫里縣(고량부리현)에 속했다. 新羅(신라)때는 靑正縣(청정현)에 속해서 任城郡(임성군) 지역이 었으며 高麗(고려)때는 靑陽縣(청양현)에 속했었다. 李朝末葉(이 조말엽)엔 靑陽縣(청양현)에 속했으며 李條末曄(이조말엽) 高宗 (고종)32년(1895)에 靑陽郡 東上面(청양군 동상면)의 지역으로 서 <한티> <대티>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五龍里(오 룡리) 廣大洞(광대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大峙里(대치리)라 하고 大峙面(대치면)에 편입되었다. ▶한티고개 大峙面(대치면)에서 定山面(정산면) 馬峙里(마치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한티고개>라 부른다. 옛날에는 이 고개를 나누어 정산쪽을 定山馬峙(정산마치) 청양쪽 을 靑陽馬峙(청양마치)라 하여 행정적으로도 靑陽縣(청양현)과 定山縣(정산현)으로 나누워져 있었다. <한티고개>는 칠갑산이 가 로놓여 이 부근에 人家(인가)가 全無(전무)하였었다. 그래서 이 고개를 넘어 갈려며는 산고개 첫머리의 -邊에서 움막을 짓고 밤 을 지내고 왕래하였다 하는데 그후 집을 짓고 客廳이 있었고 酒 幕(주막)이 생겨서 한때는 편리하였지만 그후 산적들이 많아서 자주 괴롭힘으로 살지 못하고 산아래로 옮겨와 살게 되었다 한 다. 말을 매놓고 하룻저녁을 묵은 다음 고개를 넘는다 해서 <馬 峙마치>라 불렀고 그후는 큰 고개라하여 <한티고개> <대티고개> 라 부른다 한다. ▶대치(大峙) <한티고개>아래 청양쪽으로 자리한 마을을 고개 명칭따라 <大峙> 라 부른다 큰고개 아래 마을이 있다해서 <대치>라 부르게 되었 다 한다. ▶약수터 大峙里(대치리) 深谷(심곡)에 岩壁(암벽)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항시 일정하게 고여 있는 곳이 있는데 여기를 <藥數약수터>라 부 른다. 옛날에 앉은뱅이가 꿈에 산신령의 계시를 받아 이곳에 찾아와 계 시대로 沐浴(목욕)을 하며 정성을 다하자 걸어서 다니게 되었다 는 전설이 있는 <약수터>다 지금도 이 약수터를 찾는 사람들이 끊어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