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설 ▶ 청남면 청소리 ▷몽루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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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5-10 | 조회 | 7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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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이백년전 일이다. 충청도 관찰사로 공주땅에 디딘 趙(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는 금강을 건너면서 첫마디가 "참 허! 허!" 하는 감탄사였다.한 다. 곁에서 시중을 드는 하인이 "뭐 불편한게 있사옵니까?"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때였다. "산이 좋으면 인물이 있고 강물이 좋 으면 여인이 있는 법 정말 듣던 대로의 공산성이로다"하고 갓깃 을 올렸다. 조 감찰사는 정말 풍류에 사는 사람이었다. 술을 마 시고 글을 읽고 산천을 바라보며 글을 짓고 그래서 한양의 선비 들도 그의 학문과 풍류를 높이 샀다. 그는 공주에 부이하자마자 도내를 순시한답시고 여기저기를 찾게 되었다. 순시한는건지 순 방하는 것인지 그가 가는 곳엔 항상 술상이 준비되어 있었고 글 줄이나 읽었다는 사람들이 모였었다. 그는 수군첨사의 고을인 안 흥에 가서 바다의 흥취에 취했고 해미에 들려선 일락(日落)의 멋 을 술잔에 담았었고 홍주에 들려선 기녀의 가락에 취했고 수군절 도사의 고을 오천에 들려선 갈매기의 울음소리에 흔잡을 잊었었 고 청양에 들려선 청수의 맛에 취했었다. 그러다가 똑바로 공주 로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부여도 한번 훑어볼겸 정산에 서 가평으로 길을 꾸부리고 선 청남땅에 오게 되었다. 지금의 충청남도 청양군 청남면 감동리에 그가 나타나자 시골 선 비들이 술상을 준비했고 흥취에 돋구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퍼 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내일 모레면 이번의 여정을 끝내는 판 이라 마음껏 마시고 마음껏 글을 읊었다.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 었다. 그가 곤히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머리가 하얀 노인이 나타 났다. 풍류란 원레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거늘 자기읨 ㅓㅅ을 고 을에 남겨놓고 줄도 알아야지. 백발의 노인이 그에게 훈계조로 이렇게 말하자 그는 벌떡 일어나서 무릎을 끓었다. 보기에 너나 여기의 멋을 알것 같아 그러니 여기다가 정자를 하나 세우도록 하라. 그는 얼떨떨한 가운데 "네"하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약 속을 잊지 말고 그리고 내가 벼루와 붓을 줄테니 이것으 가지고 살면 부귀영화가 따르리가" 이렇게 말하고 미소를 띄우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꿈속에 서 깨어났다. 헌데 이게 원일인가? 꿈속에 받았던 벼루와 붓이 머리맡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꿈에 받은 물건이 이렇게 손 에 쥐여 질 줄은 몰랐다. 그는 이튿날 새벽이 되자 여기 현감을 불러 들였다. 그리고선 여기다가 크게 정자를 하나 지으라고 했 다. 그는 공주땅에 돌아와서 두딸에게 벼루와 붓을 나누어 주었 다. 그리고 몇일이 지났다. 그곳 현감으로부터 정자가 완성됐다 는 소식이 왔다. 이왕이면 낙성식에 오실때는 현판을 하나 써가 지고 오라는 부탁도 적혀 있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꿈과 인연 이 있는 정자이고 해서 정자이름을 몽루정(夢樓亭)이라 짓고 그 벼루와 붓을 크게 편판을 쓰고선 그것을 파도록 했다. 낙성식날 그는 현판을 들고 그곳을 찾아 갔다. 들판에서 낮은 산을 바라보 며 마치 강물줄기 같은 뜰을 앞뒤로 하고 서 있는 정자는 정말 보기가 아름다웠다. 그는 정자에 올라 앉아서 글을 지어 선비들 과 소리높여 읊었다. 지금 여기엔 정자가 있었던 옛터만 남았을 뿐 정자의 흔적은 없다. 봄 여름 가을철이면 수수대로 묶어서 횃 불대를 만들어 놓고 뛰어놀던 패싸움의 고장 청남땅 여기의 몽루 정은 부여로 건너는 왕진나루터의 길목에 있고해서 그후 시인 묵 객들이 많이 찾아던 정자인데 어느해던가 자취를 감추었다한다. 꿈속에 얻었던 벼루와 붓의 행방은 지금 알수 없는 것처럼 몽루 정의 모습은 없고 이야기만 전해 내려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