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메뉴 닫기
서브페이지 배경
전설 ▶ 남양면 금정리 ▷사양치의 금정 사람들 게시판 상세보기

[청양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전설 ▶ 남양면 금정리 ▷사양치의 금정 사람들
작성자 청양문화원 등록일 2002-06-11 조회 900
첨부  
 

사양리에서 부여군 은산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 

를 <사양치> <사양재>라고 부른다.
옛날 백제때에 지금의 남양면 금정리 사람들은 마을에 좋은 우물
이 있었으므로 그 우물울을 왕이 마신다 해서 매일 물을 길어 가
지고 부여 궁중까지 날라야 했다. 그들은 백제의 백성이였으므
로 싫으나 좋으나 새벽에 물을 길어 가지고 부여에 가서 궁중에
물을 바치고 이 고개에 들어서면 꼭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하여
그들이 <사양치> <사양재>라고 이름지은 고개이다.
백제 말엽 의자왕이 꼭 이 물만 마셨으니 백성들을 어지간히 괴
롭힐 때였다.
싸리나무가 무성한 싸리재를 넘어서 하루는 그들이 힘겨움게 물
둥이를 지고가는데 어제까지 없었던 초막이 생기는 것이 여간 반
가운 일이 아니었다. 이곳에 초막을 지은 사람은 중년이 훨씬 넘
은 아낙네였다. 그런 후부터는 금정 사람들이 곡식을 갔다 주곤
해서 그 아낙네는 쌀을 갈아서 떡을 만들어 지나가는 그들에게
팔곤해서 그 아낙네는 잠깐사이에 집에 짓고 이제는 술까지 빚어
서 팔곤했다. 금정사람들은 으례히 아침에 집을 출발하면 이 고
개에서 쉬어갔다. 그리고 돌아올때는 이곳에 머므르며 술을 마시
곤 했었다. 어느 누구보다 궁중을 왕래하는 그들이었으므로 궁중
안팎의 일에 훤해진 그들은 날이 갈수록 그 아낙네에게 모두 알
렸다. 처음은 궁중안이 후비가 몇이나 되는등 궁녀들은 치장을
어떻게 하느냐는 등 평범한 것부터 물어보다니 날이 흐를수록 요
즈음 나라군사들은 어디로 많이 빠져나가냐는등 윤충장군은 어떻
게 지내냐는등 어려운 문제룰 부탁하였지만 순박한 그들은 조정
에서 들은 그대로 그 아낙네에게 흥미롭게 모두 알렸다. 그런던
어느날 그 아낙네는 하루사이에 감쪽같이 없어졌다. 그래도 순진
한 금정사람들은 그 아낙네가 친정이라도 다니러간 것으로 그리
알고 었었다.
아낙네는 사흘이 되어 돌아왔다. 혼자 살기가 괴로워서 친정집
에 잠깐 다녀왔다고 했다. 그후 금정사람들은 그 아낙네가 시키
는 대로 말을 잘 들었다. 백제는 지금 태평세월을 보낼 때가 아
니라는 것도 알려주었고 의자왕이 지나치게 방탕을 한다는 이야
기도 알려주었고 충신들이 하나 둘씩 궁중을 떠나간다는 이야기
도 알려주었다. 백마강엔 왕에게 아첨하는 무리들이 밤마다 선유
로 세월을 보내고 궁중의 창고는 비였으며 싸움터에 나간 군사들
이 배가 고파서 허덕인다는 말도 들은 대로 말을 전해주었다.
백제가 어수선할때 이 초막엔 한 아낙네가 더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선 그 아낙네는 부산하게 고개를 내려가선 며칠씩 지내다
가 돌아오곤 했었다. 금정 사람과 아주 친해진 아낙네는 요즘
은 돈까지 주면서 웅진에는 얼마만큼 군사가 있는지 알아달라
는 부탁도 했다. 허나 그들은 그거야 금정 샘물만 지나가서 성안
을 들어가면 된다고 하고선 웅진에 가서도 사실을 알려다 주었
다. 그런 날이 며칠 흘렀다. 하루는 금정사람들이 물을 지고 조
정에 들어갔더니 백제에 나당군이 처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
다. 궁중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잇었다. 그들은 궁중에 물을 바치
고 돌아오는 길에 사양재에 올라가선 그 아낙네에게 백제안에
라당군이 쳐들어와서 큰일났다고 말을 전했다. 아낙네는 그렇게
되었느냐고 지나가는 말로 그들의 말을 받고선 그들에게 술상을
차려주었다. 그 이튿날도 그들은 물을 짊어지고 가는 길에 사양
재에 들렸더니 초막은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선 그때부터 한참동
안은 초막 아낙네들이 보이지 않았다. 백제에 라당군이 쳐들어와
서 사비성이 점령되는 그 이튿날도 물을 짐어지고 갔다. 그 이튿
날도 물을 짊어지고 궁중에 들렸더니 물을 받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곤 그냥 물을 버리고 돌아왔었다. 그후 한달이나 지났을까
백제군사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고 백제가 망했다는 소문이 금정
까지 들려왔다. 금정사람들은 서글퍼서 한탄을 하다가 하루는 물
을 나르던 한사람이 부여쪽을 살피기 위해 부여로 가는 길에 사
양재를 들렸었다. 아낙네는 산라병들에게 둘러 쌓여서 음식을 먹
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 갔지만 그 아낙네는 모르는 척 하는 것
이었다. 그는 부여로 가다가 돌아서서 마을로 돌아왔다. 그는 마
을에 들어와서는 정정들을 모았다. 그리고는 우리도 속았다고 외
쳤다. 사양재 그 계집이 신라병들과 어울리며 자기를 보고 모르
는 체 하드라는 이야기도 했다, 궁중에 물을 나르던 장정과 마을
사람들이 밤을 타서 사양재 초막으로 들어가서 두 아낙네를 그집
어내어 밧줄로 묶어서 초막에 안에 던지고 불을 질렀다. 불더미
속에서 아낙네들이 살려달라고 외쳤다. 허나 금정사람들은 눈물
을 흘리면서도 초막이 타고 그들이 숨질 때까지 불탄 자리를 바
라보기만 했다. 한 나라의 백성이 정성껏 모신 왕이 죽고 나라
가 망한 슬픔에 복바쳐 그 후론 그들은 사양재를 넘어 다니지 않
았다 한다. 기울은 재라해서 <사양재>라 부르며 지금도 고개에

서 가끔 아낙네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