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목면 지곡리 ▶ 간두문 외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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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8-12 | 조회 | 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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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백제)때는 悅己縣(열기현)에 속했고, 新羅(신라)때는 悅 城縣(열성현)에 속했으며 高麗(고려)때는 定山縣(정산현)에 속 했었다. 李朝(이조)때는 定山縣(정산현)에 속했고 李朝襪葉9이 조말엽)엔 定山郡(정산군) 木面(목면)의 地域(지역)으로서 큰 못이있으므로 (못골) 또는 (지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 역 개혁 때 曾谷里(증곡리) 外池谷里(외지곡리) 內池谷里(내지 곡리)干杜門里(간두문리) 下新代里(하신대리) 각 일부를 병합하 여 池谷里(지곡리)라 해서 청양군 목면에 편입되었다. ▶ 간두문 구목면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을 干杜門(간두문)이라고 부른다. 池谷里(지곡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마 을이라 干杜門(간두문)이라고 부른다. ▶ 밭못골 <못골. 바깥쪼긍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밭못골>이라고 부른다. 목골 바깥쪽에 자리한 마을인데 <바깥목골>이라 부르 던 것이 변하여 <밭목골>이라고 부른다. ▶ 솔모랭잇들 구면사무소앞에 있는 들을 <솔모랭잇들>이라고 부른다. 솔 <松 林(송림)>이 울창했던 모퉁이 옆의 들이라 <솔모랭잇들>이라고 부른다. ▶ 원터 干杜門(간두문) 북동쪽에 자리한 마을을 元垈(원터)마을이라고 부르며, 옛날에 원이 살았던 곳으로 원집이 있었던 마을이라 < 원터>라고 부른다. 지금도 옛집터에서는 옛토기와가 발굴되기 도 하고 또한 <원터> 옆으로 <증계실>과 <밭못골> 사이에 골짜 기를 <원터골>이라고 부른다. ▶ 증계실 <원터> 북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증계실>이라구 부른 다. 옛날에 그릇점이 있었던 마을인데 <증계실> <김계실> <중 곡>이라고 부른다. ▶ 지곡 지곡리에 있는 마을이다. 큰 못이 있으므로 <못골> 또는 <池谷 (지곡)>이라고 부른다. ▶ 이잠의 정려(旌閭) 元垈里(원터)에 旌閭(정려)가 있는데 이 旌閭(정려)가 李朝(이 조) 高宗(고종)때의 孝子(효자) 李潛(이잠)의 旌閭(정려)가 있 다. 그는 全州李氏(전주이씨)로 孝幸(효행)이 지극하여 高宗(고 종) 10년 (1823)에 정려를 내렸다. ▶ 앵봉산 木面(목면)과 定山面(정산면0 그리고 (靑南面) 경계에 자리 한 산이 있는데 이 산을 <앵봉산> <꾀꼬리봉> <치성산>이라고 부른다. 산 높이가 350m되는 산으로 鶯巢柳枝形(앵소유지형) 의 명당이 있는 산이라 해서 <앵봉산> <괴꼬리봉> <앵봉> <치 성산>이라고 부른다 한다. ▶지석묘 목면 지곡리 <목골>에 고인돌이 있는데 이 고인돌 무덤은 南方 式(남방식) 고인돌로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고인돌>로서 馬韓 (마한) 以前(이전)에도 사람이 살았다고 추정할 수 있는 곳이 다. <선돌>도 1개가 있다. ▶ 지곡리 토성 이 土城(토성)은 곧 木面(목면) 池谷里(지곡리)에 있는 土續山 城(토지산성)이다. 城壁(성벽)의 句配(구배)가 급하여 이에 木 柵(목책)을 施設(시설)하여 敵侵(적침) 을 막아내도록 되어 있 으니 곧 古代(고대)의 設柵之城(설책지성)으로 이는 頭陸尹城 (두륙윤성)에 附屬陣(부속진)의 第二(제이)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