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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장평면
작성자 청양문화원 등록일 2003-02-04 조회 585
첨부  
 

七甲山을 준령으로 하고 扶餘(부여)쪽으로 작은 山(산)과 들로 

이어진 비옥한 地域(지역)에 長坪面(장평면)이 자리했다. 風水
(풍수)에 따르면 人物(인물)과 財物(재물)이 묻히는 곳이라 하였
는데 百濟(백제)때는 悅己縣(열기현)에 속해서 人物(인물)이 스
치는 곳이고 財物(재물)이 빛을 보는 곳으로 登場(등장)하였고
純朴(순박)한 情(정)에 묻혀 사는 아늑한 지역이었다. 百濟(백
제)때에 사비성의 외곽으로 佛敎(불교)의 요람지였던 것이 新羅
(신라)때까지 이어지는 데 新羅(신라)때는 悅城縣(열성현)의 地
域(지역)이었다. 高麗(고려)때는 定山縣(정산현)에 속해서 恩山
縣(은산현)과 접경을 이루는데 忠淸道(충청도) 庶民文化(서민문
화)의 요람지가 되기도 하다. 그림으로 佛敎文化(불교문화)에 뿌
리한 庶民文化(서민문화)가 번창해 감에 따라 李朝(이조)에 접
어 들어선 新羅(신라)ㆍ高麗(고려)때 자리한 庶民文化(서민문화)
가 李朝(이조)의 權力(권력) 銃治(통치)에 合流(합류)되기가 힘
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忠淸道(충청도)에서 本質的(본질적)으로
따르기 쉬웠던 儒學(유학)이 定着(정착)하기 아주 힘들었던 곳이
며 지금까지 장평의 農民文化(농민문화) 庶民文化(서민문화)는
확실히 忠淸道(충청도) 全般(전반)의 뿌리로 해석되기도 한다.
李朝(이조)때엔 定山縣(정산현)에 속했다가 李朝末葉(이조말엽)
엔 定山郡(정산군)으로써 赤面(적면)이라 하여 道林(도림) 外16
個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年 行政區域(행정구역) 개혁때 冠面
(관면)의 廣岩(광암) 外 16個 洞里(동리)와 場村面(장촌면)의 笠
村里(입촌면) 一部와 扶餘郡(부여군) 道城面(도성면)의 九龍里
(구룡리) 一部와 같은 군 公洞面(공동면)의 금강리 一部를 병합
하여 다시 赤谷面(적곡면)이라 해서 靑陽郡(청양군)에 편입되어
美堂里(미당리) 赤谷里(적곡리) 樂只里(낙지리) 中秋里(중추리)
隱谷里(은곡리) 分香里(분향리) 冠峴里(관현리) 化山里(화산리)
竹林里(죽림리) 之天里(지천리) 九龍里(구룡리) 外 11個里 改編
(개편) 관할하게 되었고 이후 주민들로 부터 적곡면이 붉을 적 ,
골곡자로 뜻의 해석이 좋지 않다는 주민들의 여론이 있어 면명
명칭을 칠갑삽 아래 곡창 지대를 이루는 장수 평야를 본떠 장평

으로 87년 1월 1일 면명을 개칭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