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청남면 청소리 ▶냇말 외 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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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3-03-12 | 조회 | 5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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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때 열기현에 속했고 신라때는 열성현에 속했으며 고려때는 정산현에 속했었다. 이조초엽엔 정산현에 속했으며 이조말엽엔 정산군 청면의 지역으로서 맑는 소(沼>가 있으므로 <청소골>이 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薪田里, 靑所里, 泉內里, 茅谷里의 각 일부을 병합하여 靑所里(청소리)라하고 청양군(靑陽 郡) 청남면(靑南面)에 편입되었다가 그후에 면명개칭에 의하여 청남면(靑南面) 청소리(靑所里)가 되었다 ▶냇말 <청소>서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냇말> <네안말>이라 고 부른다. <달천>안쪽에 마을이 있으므로 냇물 안쪽으로 위치 해 있다해서 <냇말> <내안말>이라고 부른다 ▶방죽골 <청소> 남서쪽으로 자리한 마을을 <방죽골>이라 부른다. <방죽 >안쪽으로 마을이 있다해서 <방죽골> <안방죽골> <방축리>라 부 른다 ▶섶밭말 <냇말>안쪽으로 자리한 마을을 <샆밭말>이라 부른다. 엣 날엔 숲이 무성해서 숲속에 마을이 있다해서 <섶밭말>또는 <薪展>이라 고도 부르는 마을이다 ▶청소 <냇말>동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청소> <청소리>라 고 부른다. 먼 엣날 이 마을에 예의바른 총각 한 사람과 알뜰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마을 어른의 권유로 혼례를 치르고 다정한 부부로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날 그네를 뛰다가 그들은 같이 그네에 올랐는데 그만 그네를 뒤다가 그네줄이 끊어져서 똑 같이 죽었다 한다. 마을에서는 애석하게 생각하고 그 자리에 무 덤을 따로따로 만들어 주었느데 그후 그 무덤에서는 각각의 소나 무가 한나씩 돋아나더니 크게 자랐다 한다. 지금도 동구밖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데 이 소나무가 그들의 화신이라 한다. 그 래서 마을 지명도 <청솔>이라고 부르다가 <청소>로 고쳐 부르지 만 푸른 소나무가 있는 곳에 그들의 넋이 있다고들 말하는 마을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