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치면 장곡리(長谷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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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3-03-22 | 조회 | 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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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청양군 동상면의 지역으로서 골짜기가 길므로 장곡이라 하 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동, 광전리 일부를 병합 하여 장곡리라 해서 대치면에 편입됨 ▶숫-골[골] 장곡 북쪽에 있는 골짜기, 鷄谷이라고도 함 ▶당-너머[골] 장곡 정동쪽에 있는 골짜기, 산신당 너머가 됨 ▶배암-산<白馬山, 白米山) [산] 장곡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 315m 흰 바위가 있음. 이산을 백마 산이라 한 것은 옛날 어느 도사가 붙인 이름으로 큰 장군이 타 는 말이라 하여 백마산임 이 산을 중심으로 사택골, 새암골, 구수골, 안장골, 인마장터, 연애골(연회골)이 있다. 그리고 백미산산이라 하는 것은 수 많은 군사들이 먹을 양식, 즉 노적 가리라 하여 백미산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송-골<송곡, 송곡리> [골] 장곡 북쪽 골짜기로 여기에 장곡사가 있다 ▶장곡사(長谷寺) [절] 장곡리 29번지 곧 칠갑산(군, 산천)안에 있는 절, 백제 제 29 대 법왕원년(599)에 창건하고 신라 제 47대 헌안왕(憲安王) 때 보조선사(普照禪師)가 다섯번째 중수하였다 하며 지금 전하는 중 수기에는 정조 원년(1777)에 중 학연(學緣)이 고종 3년 (1886) 에 법행(法行), 처인(處仁)이 고종 43년(1906)에 전오(佺午)가 각기 중수 하고 1960년에 정부의 보조로 크게 중수했음. 이 절 에 상대웅전, 하대웅전,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 철조비로 사나불좌상부석조대좌, 금동약사여래좌상이 있어서 더욱 유명 함, 약사여래불 오른쪽에 아미타불이 있었는데 일인들이 가져가 서 일본 법륭사에 안치하였다 함 ▶장곡사(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 [국보] 장곡사 상대웅전 우측에 안치되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이 며 국보 제 58호로 지정됨 ▶장곡사(금동약사여래좌상) [보물] 장곡사의 하대웅전 복판에 있는 약사여래 불상. 높이 88cm 금도으로 디고 8모를 된 상, 중, 하의 연화대석 위 에 안치되었는데 그 솜씨가 기묘하여 보물 제 337호로 지정됨 ▶장곡사(상대웅전) [보물] 장곡사에 있는 대웅전, 대웅전이 둘이 있는데 위족이 됨. 앞면이 3칸, 옆변이 2칸의 단층 맞배 기와집으로 되었는데 보물 제 162호로 지정됨 ▶장곡사(철조비로사나불좌상부석조대좌) [보물] 약사여래불 왼쪽에 있는 부처의 대좌, 네모진 반석위에 가늘 고 긴 기둥을 세우고 다시 그 위에 8모로 된 연화석을 밭쳐서 석등처럼 되었음. 높이 165cm 보물 제 174호로 지정 ▶장곡사-하대웅전 [보물] 상대웅전 아래에 있는 대웅전, 제도는 상대웅전과 같음. 보물 제 181호 ▶장곡사-설선당 [문화재 자료] 이조 중엽 추정 건축물로 곡선미와 소박한 부재로 된 건물 제 273호로 지정 ▶절골 [골] 장곡사가 있는 마을 ▶새앙-바위[바위] 이것은 장곡리으 남쪽 큰 냇가에 있는 바위, 옛날에 새양이라 는 장수가 홀어머니, 세 누님과 살고 있었는데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무예가 뛰어나 어느날 어머니가 남매를 불러 시합을 시 켰다 새양은 새양바위와 냇물 건너 장벽에 줄을 매고 곡에를 시키 고 누님에게는 지금의 부여군 은산면에 있는 성문을 닫고 오라 고 시켰다. 그 결과 누님이 이기게 되자 어머니가 새양이 이기 게 하려고 부르는 바람에 줄에서 떨어져 죽었다 하여 새양바위 라 하며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여 누님도 따라 죽었다고 전해오 고 있다 ▶아니-골<아흔이골> [골] 장곡리으 동북방의 있는 골로 이 계곡에 있는 골이 아흔개나 된다하여 장승이 있던 곳인 장승백이골이 있으며 벼락바위가 있다 <<청양군지 19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