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남양면 대봉리(大鳳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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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4-05-27 | 조회 | 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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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때는 사시량현에 속했고, 신라때는 신량현에 속했으며 고려 때는 홍주에 속했었다. 이조때에 홍주군에 속했고 이조말엽엔 홍 주군 상전면의 지역인데 1914년 생정구역 개혁때에 용계리 원대 리 당산리 봉동 대대리 천욱리 고곡리 우구리 금마리 대치리 천 척리 귀비산 각 일부를 병합하여 대치와 봉동의 이름을 따서 대 봉리라 하여 청양군 사양면에 편입되었다가 1987년 1월1일 면명 변경에 따라 남양면으로 개명되므로 남양면 대봉리가 되었다. ▶金馬洞(금마동) 당산 남쪽으로 자리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금마동)이라 고 부른다. 옛날부터 마을에 말보다 큰 금이 매장되어 있는 마 을이라 (금마동)(기울매)이라고 부른다 한다. 구봉광산의 금맥 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書院(서원)말 대봉리에 자리한 마을이다. 이조숙종때 각현이던 명제 윤증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들이 서원을 건립하고 윤증의 입패를 봉 안하며 유생들이 수학하였던 서원이다. 지금도 (명제윤선생 영 모비)라고 각명한 석비가 서 있다. ▶솟골 가누골 남서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솟골)이라고 부 른다. 마을 지형이 소의 입처럼 생겼다 하는데 마을 뒷산에 양 쪽으로 우뚝솟은 바위는 소의 뿔과 같다 하여 (뿔바위)라 부르 고 마을 앞을 흐르는 냇물은 소의 밥통인 구수 같다고 한다. 또한 냇물을 막아서 보를 만들었는데 이 보는 (구수보)라 부른 다. 소와 연관시켜 부르는 마을이라 (소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솟골)이라고 부른다. ▶가누골 기매울 서쪽 가는 골짜기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이 (가누골) 이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가늘은 골짜기에 마을이 자리해 있다 해서 (가는골)(간욱골)(간우리)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明齊書院(명제서원)터 명제, 윤증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들이 서원을 세우고 윤증의 위패를 봉안하며 수학한 서원이 남양면 대봉리에 있다. 이 서 원은 명제 윤증의 호를 따서 명제서원이라고 하는데 이조말엽 고종때에 서원폐지령에 의하여 폐하고 그 위패를 후쪽에 묻고 그 자리에 《명제윤선생영모비》란 석비가 서 있고 서원터는 경작지화 해서 여기저기 초석만이 산재되여 있다. 윤증은 인조 7년(1629)때 학자 윤황의 손자이며 윤선거의 아들 로 태어났다. 자는 자인이고, 호는 명제 또는 유봉이라고 부르 며 시호는 문성이다. 본관은 파평으로서 인조 20년(1642)에 금 산에 우거하여 아버지 윤선거와 유계에게서 공부하고 그 뒤엔 또 장인인 탄옹 권시 신독제 김집 그리고 우암 송시열 등에게 배웠다. 아버지 미촌 윤선거처럼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 학을 전공하여 특히 예학에 밝았다. 병자호란때 강화도로 피난갔다가 어머니 이씨가 순절하고 1669 년 아버지가 죽자 숙종 2년(1667)에 논산의 로성에 이사간 뒤 에는 주로 후진들의 교육에 전심을 기울였다. 숙종초에는 조정 에서 남인이 득세하여 조정에서는 그를 부르지 않았으나 1680 년 부터는 서인이 세력을 잡으니 벌써 박세채는 이미 조정에 들어가서 그를 수차 벼슬길에 나설 것을 권하였으나 응하지 않 았다. 아버지 선거때부터 스승송시열과 사이가 좋지 않아 숙종 10년 송시열의 제자최신이 상소하여 송시열에 대한 무고를 밝 히고 제자가 스승을 배반한 죄를 탄핵했다. 이어 민지중 이윤 증에 대한 예우를 중지하도록 주장하자 결국은 서인이 노론 소 론이라 했다. 송시열이 이끄는 노론이 정권을 잡게 되자 그에 겐 이조참판 대사성, 공조판서, 이조판서 및 우의정 벼슬을 주 었으나 모두 취임치 않았다. 숙종 37년(1711)81세로 죽는데 그 를 따른 서원이 금산을 비롯하여 여러곳에 있었다. ▶고실 가누골에 이어진 마을이다. (고라실)논이 있는 마을인데 (고실 )(고곡)이라고 부른다. ▶곱돌모랭이 (분텃골)앞에 있는 모랭이를 (곱돌모랭이)라고 부른다. 곱돌이 아온 모롱이라 (곱돌모랭이)라고 부른다. ▶堂山(당산) (수텃골)앞에 자리한 산을 (당산)이라고 부른다. 산에 산제당 이 있어서 (당산)이라고 부르는 산이다. ▶두내바지 당산 북동쪽에 여울이 있는데 이 여울을 (두내바지)라고 부른 다. 두 내가 합하는 곳에 여울이 있다. ▶수텃골 당산 아래에 자리한 마을을 (수텃골)이라고 부른다. 대봉리에 서 가장 큰 마을로써 숲이 많은 마을이라 (수텃골)이라고 부르 는 마을이다. 대봉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당산 아래에 자리 해서 당산 이라고도 부른다. ▶매골 한턱 서쪽에 자리한 마을이 (매골)(봉동)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다. 구룡리의 (봉화티)아래에 자리한 마을인데 매가 많은 마을 이라 (매골)(봉화리)와 연관해서 (봉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龍溪(용계) 대봉리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용이 승천한 계곡이 자리해 있다 해서 (용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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