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화성면(化城面)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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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4-08-23 | 조회 | 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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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때는 사시양현에 속했었다. 조서산 아래에 자리한 지역으로 신라때는 신양현에 속한 산골이였다. 산아래 들이 넓었으므로 고 려때부터 마을 형성이 있었던 곳으로 그 후 확실하게 농촌으로 자라온 지역이다. 고려때는 예양현에 속해서 농촌으로써 으뜸인 두메였는데 이것은 현의 고을과 거리가 거리가 멀고 순박한 농촌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왔기 때문이였다. 이조때에도 많은 국난이 있었지만 화성은 그런 피해를 입지 않았었다. 허나 이조말엽에 이르러 화성은 종교로 인한 많은 순난을 입게 된다. 천주교가 국 내에 들어옴에 따라 재빨리 자리를 잡은 곳도 화성 땅이고 한국 제2의 신부인 최양업 신부가 자란곳이 또한 화성이지만 이조말 엽 대원군의 천주교 압정에 희생자가 많은 곳이 또한 화성이다. 이조말엽엔 홍주군의 지역으로서 이조때 용곡역이 있는 화성 이 름을 따서 화성면이라 하여 화산외 23개 동리를 관할하다가 1914 년 행정구역 개혁때 여구향면의 구수외 30개 동리를 병합하여 청 양군에 편입되고 광평리 구재리 기덕리 농암리 매산리 산정리 수 정리 신정리 용당리 장계리 화강리 화암리 등 12개리를 관할하 게 되였다. 이조에 들어서서 새롭게 개혁을 이두르는 근대적 인 물이 많이 배출되는 고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