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메뉴 닫기
서브페이지 배경
비봉면 관산리(寬山里) 게시판 상세보기

[청양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비봉면 관산리(寬山里)
작성자 청양문화원 등록일 2004-11-02 조회 754
첨부  
 

백제때는 고량부리현에 속했고, 신라때는 청정현에 속했으며 고 

려때는 여양현에 속했었다. 이조때는 청양현에 속해서 이조말엽
청양군 서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에 따리 관동과
산막리를 병합하여 관산리라하고 비봉면에 편입되었다.

지치바위
<구적골>안에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지치바위>라고 부른다.
바위가 넓고 길고 그아래에 냇물이 흘러 내려가 놀이터로서 좋
은 장소로 알려진 바위다.

은골
<대장골산>아래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은골>이라고 부른
다. 옛날에 고을이였던 마을이라 <원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해
서 <은골>이라 부르는데 관청이 자리해 있었다해서 <관동>이라고
도 부른며 <어은곡>이라고 부른다.

옥당집
<은골>과 록평리 접계에 있는 들을 <옥당집>이라고 부른다. <은
골>에 고을이 있을때 이곳에 옥이 많이 있었다 해서 <옥당집>이
라고 부르는 들이다.

송대산
산막리에 자리한 산을 <송대산>이라고 부른다. 옛날에 큰 소나무
가 무성해서 무성한 소나무로 우거진 산이 또한 보기에 한 나무
의 푸른 소나무처럼 보였다 한다. 그래서 큰 소나무가 많고 큰
소나무가 하나의 소나무처럼 보인다 해서 <송대산>이라고 부른
다.

상여바위
<은골> 북동쪽 <법산>에 바위가 있는데 이바위를 <상여바위>라
고 부른다. 바위가 상여처럼 생겼다 해서 <상여바위>라고 부른
다.

산막리
<은골>남동쪽으로 깊은 골짜기에 마을이 있는데 이마을을 산막리
라고 부른다. <법산>과 <비봉산>사이에 자리한 마을로서 산막을
치고 사람들이 처음에 살았다해서 <산막리>라고 부른다.

관산리 산신제
관산리 뒷산에 산제당이 있는데 산제당에서는 매년 정월(음력)
에 길일을 택해서 산신제를 지낸다. 관산리의 산신제는 지금으로
부터 약 300여년 전부터 지내는 산신제로 잡은 잡신을 몰아내고
마을의 평안을 비는 산신제로 제화양식은 다른 곳과 비슷하다.
지성이 미숙하면 해가 있었다는 설화가 있는 산신제다.

대장골과 말둠벙
비봉면 관산리 <은골> 뒤에 높이 350m의 산을 <대장골산>이라 부
르고 그아래에 있는 둠벙을 <말둠병>이라고 부른다.
옛날 아주 옛날에 <은골>에 장수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때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기운이 장사였고 자라면서부터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산에서 주로 살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대나무를 들고 다니면서 곧잘 산새들을잡았었다. 산새를 잡으면
집에 내려갈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지 산새를 구워 먹고 산을 헤
메다가 큰 바위가 있으면 불끈 들었다가 내던지곤 했다. 그가 항
시 벼르고 벼르던 이곳 호랑이와도 친해서 그가 열 다섯이 넘었
을 때는 호랑이를 앞장 세우고 산 길을 헤맸었다. 그러다가 하루
는 지나는 도승을 만나 살을 뛰어넘는 연습을 하게 됐다. 지리산
에서 왔다는 도승은 그의 재주에 매혹되었던지 그와 한참 동안
을 산에서 살았었다. 그러다가 그가 산을 곧잘 뛰어넘게 되었을
때 도승은 홀연히 떠나갔다. 그리고 도승이 떠난 후 산에서
야생마 한마리가 뛰어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 야생마를 잡아서
나무에 챙챙 감아놓고 오랫동안 먹이를 주면서 기르더니 다음부
터는 야생말을 타고 산을 헤매기 시작했다. 말은 거칠었다. 허
나 한번 달리면 산과 들을 잘도 휘젓고 달렸다. 그래서 다음은
말은 타고 산을 뛰어 넘는 연습을 했다. 몇일 안가서 말은 잘도
산을 뛰어 넘었다. 그는 이제 한 사람의 장수였다. 산아래 마을
에 내려가면 양반들이 그를 업신 여겨서 산아래를 내려가지 않았
다. 그러다가 하루는 그가 말을 타고 비탈길을 내려가는데 마침
고개를 넘어오다가 대변을 보느라고 웅크라고 앉아있는 양반의
갓을 떨어뜨렸다고 말하게 됨으로 양반들은 격노해서 산으로 올
라와서 그를 잡으려 했다. 그를 잡아 없애버릴 듯이 양반들은 종
을 앞세우고 산을둘러 쌌다. 양반들은 크게 외쳤다. 어서 내려와
서 무릎을 끓으라고 소리쳤다. 허나 산꼭대기에서 대장군처럼 아
래를 바라보던 그는 양반들이 가소로웠던지 「흥」하고 웃더니
덥썩 말을 꾸부리게 한다음 말로하여금 크게 뛰게 하더니 잠깐
사이에 산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양반들이 이번에는종들을 앞세
우고 건너 산으로 덤벼들었다. 그는 여기에서도 가소롭던지 말에
서 내려 바위위에 말을 매달아 놓고 한잠 푹 자더니 그들이 가까
이 오는 것을 보고 다시 말에 올라타더니 이번에는 먼저번 산으
로 건너갔다. 양반들과 종들은 또 허탕을 치고 이쪽산으로 옮길
라 하더니 날이 어두워지자 그들은 마을로 내려갔다. 그래서 그
는 그날밤 먹을 것을 찾아 늦게 산을 헤매다가 먹을 것을 찾지
못하고 홧김에 마을로 내려가선 한 양반집에 들려 닭 몇마리를
훔쳐들고 산에 와서 그날 허기진 배를 채웠었다. 그는 배가 고팠
었다. 그래서 닭을 마구 뜯어 먹었었다. 헌데 그가 닭고기를 입
에 넣어 먹을때 마다 어쩐일인지 말이 마구 하늘에 대고 구슬프
게 우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말은 자기의 말을 듣지를 않았었
다. 허나 산에서 내려갈 수도 없고 사실상 내려가기도 싫었던 그
는 산에서 이산 저산으로 뛰어다니며 장수로서 이제는 그만한 능
력을 갖추웠을 때였다 하루는 늦게 나라에 난리가 일어났다는 소
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힘자랑도 할겸 나라에 처들어
오는 오랑캐와 싸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수소문 해
서 오랑캐가 쳐들어 오는 곳을 알아낸 다음 여기를 하직하고 그
쪽으로 가기위해 채비를 차렸다. 우선 말에게 먹을 것을 많이 먹
였다. 그리고 이제는 떠나야 겠다고 힘껏 말고삐를 잡아 다녔
다. 말은 하늘에 대구 구슬프게 울었다. 그러더니 뛰어넘을 자세
로 번쩍 앞발을 들고 하늘로 솟구쳤으나 건너편 산에 닿지를 못
하고 그만 땅 아래로 거꾸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말의 울음은 더
욱 커져서 하늘을 진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높은 산에서 장
수와 말이 떨러져 죽었다 한다. 지금 관산리에 들리면 <대장골산
>이란 산이 있는데 이곳은 옛날 장수가 기거하면서 무술을 닦은
산이라 <대장골산>이라 부르고 산아래에 <말둠벙>이란 웅뎅이가
있는데 여기는 말이 산을 뛰어 넘다가 떨어져 죽은 곳이라 한
다. 또한 산에는 말굽과 말이 누워있었던 형태의 바위가 있는데
이는 그때 한 장사와 말이 산에서 기거할 때 생긴 자국이라 한
다.

물내재
<관산리>에서 동쪽 운곡면 모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물내재>라
고 부른다. 고개에 물레처럼 생긴 <물바바위>가 있다 해서 <물내

재>라고 부르는 고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