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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예산 게시판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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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려시대와 예산
작성자 예산문화원 등록일 2004-07-07 조회 490
첨부  
 

고려의 건국과 예산 


1. 후삼국의 분열과 고려 

신라 말 왕권의 약화와 권력층의 부정부패로 인한 집권 체제의 
이완 과정에서,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은 상실되었으며, 이 
시기 지방 곳곳에서는 생존권의 요구와 지배 체제에 도전하는 민 
중의 봉기가 속출하였다. 반란 세력은 점차 영토를 넓혀갔으며, 
군비를 저장하는 등 통일신라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특 
히 상주(尙州)의 원종(元宗), 북원(北原)의 양길(梁吉), 죽주(竹 
州)의 기훤(箕萱) 등은 처음에 일개 반란군의 두령에 지나지 않 
았으나, 모두 신라에 반목하는 행동을 취하였다. 특히 반란세력 
가운데 일부는 정권을 세우고 신라와 대항하는 인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즉 견훤(甄萱)과 궁예(弓裔)가 그 실례이다. 이들 
은 각기 세력을 모아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을 부르짖으며, 나라 
를 세우고 신라와 정립(鼎立)하게 되는데, 이를 후삼국 시대라 
고 한다. 
백제의 부흥을 부르짖으며 스스로 후백제의 왕위에 오른 견훤은 
상주지역의 가은현(家恩懸)에서 신라 경문왕 7년(867)에 가난한 
농부 아자개(阿慈介)의 아들로 태어났다. 체모가 웅기(雄奇)하 
고 기지가 척당불범(倜 不凡)하였는데, 군대에 들어가서 王京(경 
주)으로 갔다가 뒤에 서남해의 방수(防戍)에 배속되었다. 그는 
용기가 남의 모범이 되고 공로가 있어 비장(裨將)으로써 임명되 
었다. 진성왕 6년(892)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흩어지고 군도 
(群盜)가 봉기하자 그는 딴뜻을 품고 무리를 불러모아 武珍州(광 
주)를 점거하였다. 효공왕 4년(900)에는 完山州(전주)로 옮기어 
이를 도읍으로 정하고는 의자왕의 숙분(宿憤)을 씻는다 하여 자 
칭 후백제왕이라 부르고 일어섰다. 그리하여 대체로 웅진·전주 
·무주의 3주, 즉 백제의 구토를 지배하게 되어 이에 충남지방 
은 대략 후백제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견훤은 본래 성이 이씨 
였으나 견씨로 고쳤다. 견훤의 출생에 대하여 이선가기(李蟬家 
記)에 따르면 진흥왕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견훤의 
가계를 신라의 왕계(王系)에 붙여 꾸민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다. 설령 그가 신라 왕족 계통의 귀족이라 할지라도, 현실적인 
배경은 가세가 몰락한 상주 지방 농민의 아들임은 부정할 수 없 
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있다. 
무진주(武珍州·光州)의 북촌(北村)에 한 부자가 있어 미색의 딸 
을 가졌는데, 품행이 단정한 딸이 밤이 깊어지면 검붉은 옷차림 
의 남자가 나타나 교혼(交婚)하므로 그 딸이 부끄럽게 생각하고 
부모에게 알렸다. 부친이 말하기를 그 남자가 새벽에 돌아갈 때 
옷에다 긴 실을 바늘에 꿰어 두었다가 바늘을 그 남자의 옷에 찔 
러 두어라 하여 그렇게 하였다. 남자가 다녀간 날 새벽 그 실을 
따라가 본즉 바늘이 지렁이 허리에 찔려 있었다. 그후 딸은 임신 
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뒤에 견훤이다 라는 이야기이 
다. 이것은 󰡐견(甄)󰡑을 󰡐진󰡑으 
로도 발음하게 되는 계기가 되 
었으며, 지렁이 설화를 근거로 하여 후백제의 왕을 소재로 꾸민 
이야기인 듯 하다. 
견훤은 신라의 군문(軍門)에 들어가 공을 세우고 비장(裨將)이 
되어 서남해 방면에 파견되어 방위(防衛)에 공훈을 세우면서 출 
세하게 되었다. 그는 용감하고 통솔력이 있어서 많은 군졸이 따 
랐으며 특히 왕실에 불만을 품고 있는 군졸들을 잘 안무하였으 
며, 이러한 지도적 역량은 군졸들로부터 호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세상이 시끄러워지자 군 
사를 이끌고 서남쪽 주·군·현을 침공하여 한달 사이에 5천여 
동조자가 생기므로 드디어 무진주(광주)를 점령하고, 그 여세로 
완산주(完山州; 全州)에 이르러 주민들의 성대한 환영을 받았 
다. 완산주에서 크게 인심을 얻은 뒤 좌우에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삼국의 시초로 마한(馬韓:百濟)이 일어난 후에 
박혁거세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진한(辰韓:新羅), 변한(弁韓: 
駕洛)은 우리나라를 뒤따라 일어난 것이다. 백제는 금마산(金馬 
山:益山)에서 개국하여 6백년간 내려오다가 의자왕 때에 나당연 
합군이 사비성(泗틦城)에 이르러 백제를 멸하였다. 지금 
완산에 
도읍을 세우고 의자왕의 원한을 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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