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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지역은 서해안의 군사요충지 게시판 상세보기

[서천문화원] - 역사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서천지역은 서해안의 군사요충지
작성자 서천문화원 등록일 2002-05-10 조회 1208
첨부  
 
서천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에 대한 기사는 세종 8년(1426) 1월
14일조, 세종 12년(1430) 9월 24일조, 세종20년(1438) 9월 10일
조 기사에서 보이고 있다. 이중 세종 12년(1430) 9월 24일조 기
사에 보면 도순찰사 최윤덕이 충청도 비인. 보령의 두 현은 해구
(海寇)들이 가장 먼저 발길을 들여놓는 지대로 주시하고, 이어
그는 세종20년(1438) 9월 10일조의 읍성 축조 건의 중에서도 "서
천은 왜구가 쳐들어오는 첫 길목"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서천포와 마량진의 경우도 성종21년(1490) 9월 28일조 도순찰사
성건(成健)의 보고 중에 상세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 내용을 잠
시 보면,
''남포 땅의 마량(馬梁)에 정박한 병선은 조수가 차면 뜨고, 조
수가 물러가면 뭍에 있어 위급한 때에 쓰기는 어려우나, 적선(賊
船)도 또한 반드시 조수를 타고서 오게 되니, 이 때에 우리도 또
한 알맞게 대처할 만합니다. 또 그 지역은 산이 둘러 있고 물이
넓어서 배를 정박하는 곳이 얕게 드러나 조수가 물러가면 배는
마땅히 뭍에 있게 되니, 마량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오나 마량
은 본시 긴요한 곳이니, 진실로 이를 버리고 다른 데로 옮길 수
없으므로, 그전대로 둠이 편하겠습니다. 도둔곶도 또한 방비하
지 않을 수 없는 까닭으로 이전에 조전소(助戰所)라고 일컫고,
마량군관 1인이 병선 1척과 수군 30명을 거느리고 나누어 방비하
였습니다. 그러나 단지 병선 1척만으로 요충지를 수비하기란 심
히 고단하니, 모름지기 마량진의 소맹선 2척과 수군 60명을 더
보내어 방어하도록 하소서. ...중략...
서천포는 해구로서, 군산포는 약간 내륙에 있어 현세로 보면,
서천포가 첫길에 있으므로 군산포는 혁파할 만합니다. 그러나 부
안 검모포로부터 다음이 군산, 다음이 서천이니, 3진이 줄지어
있어 검모포로부터 군산포까지는 수로가 몇 백 여리나 됩니다.
만약 군산포가 없어서 그 사이에 적이 일어나면 서천포는 구원하
는 데 미치기에 어려울 것 같으며, 비록 옥구의 진영이 있더라
도 배가 없으면 또한 적절히 대처하기가 어렵습니다. 군산포는
옥구. 임피의 요충에 해당하며, 서천진은 서천. 한산의 요충에
해당하니, 관계된 것이 가볍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