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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운동가 이남규 선생 게시판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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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항일 운동가 이남규 선생
작성자 예산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121
첨부  
 

본관 : 한산 

호 : 수당·산좌 
본명 : 원팔 
활동분야 : 독립운동 
출생지 : 충남 예산 
주요수상 : 건국훈장 독립장(1962) 

선생은 1855년 서울 미동에서 태어나 21세에 향시에, 22세에 시 
마시에 합격하였으며 25세에는 문과에 합격한 후 벼슬길에 오르 
게 되었다. 
1894년 동학혁명을 계기로 청일전쟁이 벌어졌을 때에는 형조참의 
에 올랐으며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벼슬을 그만두고 상소 
문을 올려 항일운동에 앞장서 활약하다가 53세의 일기로 순국하 
셨다. 
수당 이남규 선생은 대쪽같이 강한 성품으로 기울어져 가는 나라 
를 건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일제에 대항한 애국 충절인 
의 본보기이다.선생이 영흥부사로 재직한 1894년의 갑오경장 때 
는 단발령의 조칙(임금의 말씀을 국민에게 알릴 목적으로 적은 
글)을 받았으나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는 자를수 없다." 고 강력 
한 반대를 하였다. 
1895년의 을미사변 때에는 국모인 민비가 일본인에 의해 무참히 
시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인으로 격하시켜 폐위하려 하자 이를 
결연히 반대하는 유명한 상소를 올렸다. 
즉 "전국민이 일어나 원수를 갚지 않으면 나락 되지 않는다"는 
결의에 찬호소였다. 
이 상소로 국모의 원수는 갚지 못했지만 왕비의 칭호는 복위되 
고 국상이 반포되기에 이르렀으며 후에 의병이 일어나게 된 계기 
가 되었다. 
그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1906년 통감부가 설치되자 민종식과 
함께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선봉장으로 싸웠다. 결국 의병활동 

을 하다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다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