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메뉴 닫기
서브페이지 배경
박헌영[공산주의 운동가] 게시판 상세보기

[예산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박헌영[공산주의 운동가]
작성자 예산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238
첨부 jpg m200510051426086.jpg

 

박헌영 [朴憲永, 1900 ~ 1955.12.5] 

개요 

공산주의 운동가. 
본관 : 영해(寧海) 
국적 : 북한 
활동분야 : 혁명운동 
출생지 : 충남 예산(禮山) 


본관 영해(寧海). 충남 예산(禮山) 출생. 1919년 경성고보(현 경 
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상하이[上海]로 건너가서 1921 
년 이르츠크파 고려공산당 상하이 지부에 입당, 그 해 고려공산 
청년동맹 책임비서가 되었다. 1922년 1월 김단야 ·임원근과 함 
께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코민테른의 극동인민대표대회에 참가하 
였고, 4월 국내공산당 조직을 위하여 귀국하다가 일본경찰에 체 
포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24년 출옥 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그 후 
1925년 4월 18일 서울에서 비밀리에 조직된 조선공산당 창립에 
참가하였다. 이 때 고려공산청년회를 결성하여 그 책임비서가 되 
었다. 
1946년 12월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을 조선공산당에 흡수, 
남조선노동당을 조직하였으며 초대 부위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신탁통치 지지 등 공산주의 활동을 지휘하다가, 1946년 9월부터 
미군정의 지명수배를 받자, 북한으로 도피하였다. 1948년 9월 남 
조선노동당 당수의 자격을 지닌 채 북한의 내각 부총리 겸 외무 
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1950년 4월 남 ·북노동당이 합쳐 조선노 
동당으로 발족하자, 부위원장이 되어 위원장인 김일성의 밑으로 
지위가 전락하였다. 그 후 군사위원회 위원,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의 직위에 있었으나 1953년 김일성에 의한 남로당계 
숙청작업으로 8월 3일 체포되었다. 그 후 평북 철산(鐵山)에 감 
금되어 고문을 받다가 1955년 12월 5일 반당 ·종파분자 ·간첩 
방조 ·정부 전복음모 등 7가지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 
되었다. 

[ 그림설명 - 여운형과 밀담을 나누고 있는 박헌영(왼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