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황심[순교자] | ||||
---|---|---|---|---|---|
작성자 | 예산문화원 | 등록일 | 2001-11-22 | 조회 | 1217 |
첨부 | |||||
황심 [黃沁, 1756 ~ 1801] 개요 초기 천주교박해 때의 순교자. 본명 : 인철(寅喆) 별칭 : 세례명 토마스 활동분야 : 종교 출생지 : 충남 예산군 덕산(德山) 세례명 토마스. 본명 인철(寅喆).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德山) 출생. 이존창(李存昌)에 의해 가톨릭 신자가 된 후, 지황(池潢) ·윤유일(尹有一)과 함께 중국의 북경(北京) 주교와의 연락업무 를 맡아보았다. 1794년(정조 18)말 신부 주문모(周文謨)를 북경 에서 영입해 오는 일을 하였는데, 그 일이 탄로나 이듬해 지황 ·윤유일이 체포되어 죽자 그후로는 자신이 옥천희(玉千禧) ·김 유산(金有山) 등과 함께 북경과 연락하였다. 1796년에는 동지사(冬至使)의 하인으로 위장, 북경 주교에게 주 문모의 서한을 남몰래 전달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강원도 춘천으로 피신하였는데, 황사영(黃嗣永)이 충청북도 제천 에 피신해 있다는 연락을 받자 그를 찾아가 주문모의 순교 사실 을 알리고, 사후대책을 논의하였다. 그리하여 북경 주교와 면식 이 있는 황심의 이름으로 이른바 백서(帛書)를 써, 옥천희를 시 켜 주교에게 전하기로 하고 황사영이 백서를 썼다. 그러나 옥천 희 ·황심 ·황사영은 당국에 체포되어 10월 26일 서소문 밖 형 장에서 참수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