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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自庵) 김구(金絿) 게시판 상세보기

[예산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자암(自庵) 김구(金絿)
작성자 예산문화원 등록일 2001-11-23 조회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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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 김구(1488-1534)는 조선 중종 때 문신이다. 조선 4대 서예 

가의 한사람으로 대흥현감 계문의 아들이다. 김구는 성종19년 
(1488)에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대유이다. 연산군 9년 
(1503)에 한성시에 급제했고 중종 8년(1513)에 별시문과 을과에 
급제, 홍문관 부제학(정3품)에 올랐으나 기묘사화(중종14년 
1519)로 개혁파 조광조와 연루되어 고초를 겪게 된다. 
자암은 처음에 개령으로 유배되었다가 수개월 후, 죄목이 추가되 
어 남해로 유배지를 옮겼다. 그는 남해 노량에서 13년이란 긴 세 
월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남해찬가''라 할 수 있는 경기체 
가 ''화전별곡''을 지었다. 삼남일대의 유림과 남해지역의 유림 
들과도 가까운 교우관계를 지냈다. 그와 특히 가깝게 지낸 분들 
의 이름이 자암집과 화전별곡에 나온다. 화전별곡에 나오는 남해 
사람은, 하별시, 박교수, 강론, 방훈, 정기, 하세연, 한원, 정 
소, 강윤원, 정희철 등으로 당시 실존하던 인물들이다. 자암 김 
구는 중종28년(1533)에 사면이 되어 관직에 올랐으나 이듬해인 
1534년 4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후에 이조참판(종2 
품)에 추증되었다. 
이곳에 있는 자암유허추모비는 숙종30년(1704)에 김구의 6대 후 
손인 김만화가 남해 현령으로 부임하여 김구가 생활하였던 옛터 
에 세운 것이다. 김만화는 죽림서원을 세워 조상의 얼을 받들기 
위해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모셨으나 죽림서원은 고종 원년 
(1864)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없어진 것으로 전하고 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