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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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예산문화원 | 등록일 | 2001-11-23 | 조회 | 1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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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해(李山海 1539∼1609 중종 34∼광해군 1)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 본관은 한 산(韓山). 1561년(명종 16) 식년문과에 급제, 이듬해 홍문관정자 가 되었다. 그 뒤 부수찬·병조좌랑 등을 거쳐 사헌부집의·동부 승지·대사성 등을 지냈다. 78년(선조 11) 대사간으로 서인 윤두 수(尹斗壽)·윤근수(尹根壽) 등을 탄핵하여 파직시켰다. 대사헌 ·우찬성·병조판서 등을 거쳐 88년 우의정이 되었는데, 이때 동 인이 남인·북인으로 갈라지자 북인의 영수로 정권을 잡았다. 90 년 영의정이 되었으며,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 3 등에 녹훈되고 아성부원군(鵝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정철 (鄭澈)이 건저문제(建儲問題)를 일으키자 아들 경전(慶全)으로 하여금 정철을 탄핵하게 하여 유배시켰다. 92년 임진왜란이 일어 나자 왕을 호종하여 개성(開城)에 이르렀을 때 양사(兩司)로부 터 나라를 그르치고 왜적을 침입하게 했다는 탄핵을 받고 파면되 었다. 그 뒤 풀려나와 95년 영돈녕부사가 되었는데 북인이 다시 분당되자 이이첨(李爾贍)·정인홍(鄭仁弘) 등과 대북파가 되었 다. 99년 영의정에 올랐으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1601년 다시 부원군에 봉해졌고, 선조가 죽자 원상(院相)으로 국정을 맡 았다. 서화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선조조 문장팔가의 한 사람이 다. 저서로 《아계집》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