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가환 [李家煥, 1742~18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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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예산문화원 | 등록일 | 2004-07-15 | 조회 | 6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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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 여흥(驪興) 호 금대(錦帶) ·정헌(貞軒) 별칭 자 정조(廷藻) 활동분야 정치 주요작품 《금대유고》 본문 본관 여흥(驪興). 자 정조(廷藻). 호 금대(錦帶) ·정헌(貞軒). 익(瀷)의 종손으로 남인 실학파의 중심에 있었다. 1771년(영조 47) 진사시, 1777년(정조 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성 ·개성유수 ·형조판서에 올랐다. 채제공(蔡濟恭) 을 이어 남인 중 청남(淸南) 계열의 지도자로 부상하였으나 반대 파의 공격이 천주교 신봉 사실을 중심으로 집중되었고, 결국 1801년(순조 1) 벽파가 중심이 되어 시파(時派)를 숙청하고 천주 교를 탄압할 때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1784년 생질인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권철신(權哲身) ·정약용(丁若鏞) 등 주위 인물들 사이에 천주 교 신앙이 확산될 때 이벽(李檗)과의 논쟁에서 설득당하여 한때 천주교인이 되었다. 1791년 신해박해 이후 광주부윤 ·충주목사 로 있으면서 천주교를 배척하는 내용의 가사 《경세가(警世歌)》 를 지어 전파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천주교를 탄압하였으나 공격 을 피할 수가 없었다. 문장에도 뛰어난 당대의 학자로 널리 인정받았으며, 특히 천문학 과 수학에 밝아 일식 ·월식이나 황도 ·적도의 교차 각도를 계 산하고, 지구의 둘레와 지름에 대한 계산을 도설로 제시할 수 있 을 만큼 정밀한 수준에 이르렀다. 문집으로는 《금대유고》가 있 으나 대부분의 저술은 없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