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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 [1572~1646] 게시판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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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목 [1572~1646]
작성자 예산문화원 등록일 2004-07-15 조회 662
첨부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 전주(全州) 
호 송교(松郊), 시호 충정(忠正) 
별칭 자 문백(文伯) 
활동분야 정치 
주요작품 《송교유고》 

본문 

본관 전주. 자 문백(文伯). 호 송교(松郊). 시호 충정(忠正). 효 
령대군(孝寧大君)의 후손으로 성혼(成渾)과 김장생(金長生)에게 
배웠다. 1603년(선조 36) 생원시에 급제하고 성균관에 들어갔으 
며, 북인들의 주장으로 관작을 추탈당한 성혼의 신원을 요청하 
고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을 헐뜯은 정인홍(鄭仁弘)을 배 
척하였다. 

1612년(광해군 4) 문과에 급제한 후, 1615년 병조좌랑에 이르렀 
으나 북인들의 권력독점으로 파직되었다. 그 뒤 출사를 거부하다 
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정언에 등용되어 1626년에 대사간으로 
승진하였으며, 부제학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이후로도 양사 장관 등에 계속 올랐으며, 홍문관 부제 
학으로 있던 1643년에는 원손 교육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척화론 
을 격렬하게 주창하여 정묘호란 때는 강화를 주장한 공신 권력 
가 이귀(李貴)와 크게 대립하였고, 병자호란 이후에는 주화파의 
공격으로부터 김상헌(金尙憲)을 극력 보호하였다. 

평소 왕실 재산을 관리하는 내수사(內需司) 폐지를 요청하였으 
며, 소현세자(昭顯世子) 사후 인조가 원손을 무시하고 봉림대군 
(鳳林大君)을 세자로 책봉하는 데 반대하는 등, 17세기 전반 서 
인 관인의 전형을 보였다. 좌찬성이 추증되었으며, 문집으로 

《송교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