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 한산(韓山) 호 (仰城) 별칭 자 군실(君實), 시호 정익(貞翼), 한흥군(韓興君)
본문 본관 한산(韓山). 자 군실(君實). 시호 정익(貞翼). 1651년(효 종 2) 무과에 급제, 비변랑(備邊郞)·도총사(都摠事)를 거쳐 숙 천(肅川)부사로 선정을 베풀어 거사비(去思碑)라는 송덕비가 세 워졌다.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회령(會寧)부사에 발탁되어 가선(嘉 善)대부에 오르고 한흥군(韓興君)에 봉해졌다. 그 동안 회령은 북방의 거진(巨鎭)으로서 야인(野人)들에 의한 피해가 적지 않았 는데 그가 부임하여 상인의 출입을 규제, 정원을 320명 이내, 체 류기간을 20일로 규정하여 피해를 줄였다.
현종 때 병조·공조 참판에 특진하고,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나가 성을 수축하고 군사훈련과 병기의 정비에 힘써 북방 경비에 만전 을 기하였다. 그 후 어영대장, 한성부 좌·우윤을 역임하고 숙 종 때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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