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정해박해(丁亥迫害) 때의 순교자 박보록 (朴甫祿) [?~1827.9.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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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홍성문화원 | 등록일 | 2001-11-23 | 조회 | 1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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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 정해박해(丁亥迫害) 때의 순교자. 본명 : 경화 별칭 : 관명 도항, 세례명 바오로 활동분야 : 종교 출생지 : 충남 홍주 충청남도 홍주(洪州)의 부유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33세 때인 1792년경 천주교에 입교하였는데, 세례 받기 전인 1794년에 포졸 들에게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다. 배교하기로 약속하고 석방 되었으나 곧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신앙 생활을 더욱 열심히 할 것을 맹세한 그는 외교인이 많이 사는 고향에서는 사사로운 정에 끌려 참된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장이 많을 것을 우려하여 아들 박사의와 함께 충청도 단양(丹陽)의 ''가마기''라는 산골 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기도와 묵상으로 덕행을 쌓는 등 철저한 신앙 생활을 하던 박보록은, 1794년 12월에 밀입국한 주문모(周 文謨, 야고보)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은 후 많은 외교인들에게 복 음을 전파하여 입교시키는 데 노력하였다. 1827년 전라도 지역에서부터 시작된 정해박해(丁亥迫害)가 단양 지역까지 미치게 되자, 경상도 문경의 멍애목(현 문경군 동로면 명전리)으로 피신하였으나 그해 4월 예수 승천 대축일에 이웃 신 자들과 함께 모임을 갖던 중 배교자의 밀고로 상주(尙州) 관아 의 포졸들에게 붙잡혀 투옥되었다. 그곳에서 박보록 부자는 매 우 심한 고문을 당하였지만 끝까지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 고, 오히려 배교하지 않도록 주위 사람들을 권면하였다. 그후 대 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더욱 심한 악형을 당하였으며, 마침내 사 형 선고를 받게 되었지만 사형 집행이 곧 이루어지지 않아 또다 시 옥중에서 많은 고생을 겪었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받은 심한 고문으로 사경을 헤매게 된 박보록은, 결국 병약해진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5개월 만인 1827년 9월 27일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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