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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김좌진
작성자 홍성문화원 등록일 2004-07-07 조회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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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안동(安東). 자 명여(明汝). 호 백야(白冶).

충남 홍성(洪城) 출생. 형규(衡奎)2남이다. 부유한 명문대가 출신으로 15세 때 가노(家奴)를 해방할 정도로 진취적 개화사상이 강하였다. 1905(광무 9) 서울에 올라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을사조약 체결 이후 국권회복의 신념을 가지고 애국지사들과 교류하며 국운을 바로잡을 것을 결심하였다. 1907(융희 1) 고향으로 돌아와서 가산(家産)을 정리하여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세우고, 대한협회 홍성지부를 조직하는 등 애국계몽운동을 하였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에 참여하면서 1909한성신보의 간부를 지냈고, 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서북학회(西北學會)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서북학회의 산하교육기관인 오성학교(五星學校) 교감을 역임하였으며 청년학우회 설립에도 참여하였다.

1920년 만주 청산리(靑山里)에서 이범석(李範奭) 등과 일본군을 대파하였다 . 1925년 신민부(新民府)를 조직, 군사집행위원장이 되었으며, 1929년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 주석으로, 황무지 개간, 계몽사업, 독립정신 고취에 힘쓰다가 1930124일 중동철도선 산시역 부근 정미소에서 고려공산청년회의 김일성(金一星)의 감언이설에 빠진 박상실(朴尙實)의 흉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