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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삼문
작성자 홍성문화원 등록일 2004-07-07 조회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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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창녕(昌寧). 자 근보(謹甫) 눌옹(訥翁). 호 매죽헌(梅竹軒). 시호 충문(忠文). 사육신의 한 사람. 1438(세종 20) 생원(生員)으로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144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장원, 집현전 학사 수찬 등을 역임했다. 그 후 왕명으로 신숙주(申叔舟)와 함께 예기대문언두(禮記大文諺讀)를 편찬하고 경연관(經筵官)이 되어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1442년 박팽년(朴彭年) 신숙주 하위지 이석정(李石亭) 등과 삼각산 진관사(津寬寺)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고, 한글의 창제를 위해 정음청(正音廳)에서 정인지(鄭麟趾) 최항(崔恒) 박팽년 신숙주 강희안(姜希顔) 이개(李塏) 등과 함께 랴오둥[遼東]에 유배되어 있던 명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 황찬(黃瓚)에게 13번이나 내왕하면서 음운(音韻)을 질의하고 다시 명나라에 건너가 음운 연구를 겸하여 교장(敎場)의 제도를 연구, 그 정확을 기한 끝에 1446929일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반포케 했다.

1455년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예방승지(禮房承旨)로서 아버지 승() 박팽년 등과 같이 단종의 복위를 협의했으나 모의에 가담했던 김질()이 성사가 안 될 것을 우려하여 이를 밀고, 이개 하위지 유응부 등과 함께 체포되어 친국(親鞫)을 받고, 군기감(軍器監) 앞에서 거열형(車裂刑)을 받았다. 이어 아버지 승도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극형에 처해졌고, 삼빙(三聘) 삼고(三顧) 삼성(三省) 세 동생과, 맹첨(孟詹) 맹년(孟年) 맹종(孟終)과 갓난아기 등 네 아들도 모두 살해되었다. 1676(숙종 2) 홍주(洪州) 노은동(魯恩洞)에 있는 그의 옛집 녹운서원(綠雲書院), 1681년 육신묘(六臣墓)가 있는 노량진의 민절서원(愍節書院) 외에 영월의 창절서원(彰節書院), 의성의 학산 충렬사(鶴山忠烈祠), 창녕의 물계세덕사(勿溪世德祠), 연산(連山)의 충곡서원(忠谷書院) 등에 6신과 함께 제향, 1758(영조 34)에는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문집에 성근보집(成謹甫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