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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최영
작성자 홍성문화원 등록일 2004-07-07 조회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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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는 무민(武愍). 본관은 철원.

고려말의 장군이자 충신으로 일평생을 오직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싸운 명장이다. 어릴 때부터 얼굴에 위엄이 있고 몸집이 큰 장사였으며, 15세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남긴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을 평생의 신조로 삼아 청렴결백하게 살았다.

그가 활약한 고려 말기의 나라 형편은 안으로 간신들이 판을 치고,

밖으로 왜구와 홍건적이 쳐들어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 때 최영은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안팎의 적들을 물리쳐 공을 세웠다.

1365년강화에서 왜구와 싸우던중,신돈의모함으로계림윤(鷄林尹)에 좌천되고 훈작(勳爵)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가 1371년 신돈이 처형되자 복직,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을 지냈다. 1376년 홍산 싸움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러, 이 때부터 왜구는 최영을 몹시 두려워하였다.

1377년 서강(西江), 1378년 승천부(昇天府:)에 쳐들어온 왜구를 이성계 등과 섬멸, 안사공신(安社公臣)의 호를 받았으며, 1380년 해도도통사(海道都統使)로서 왜구 때문에 서울을 철원(鐵原)으로 옮기려던 계획을 철회시켰다. 1381년 영삼사사(領三司事) 등을 지내고 벼슬을 사퇴했다가 88년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이 되었는데, 이 때 명나라가 철령위(鐵嶺衛)를 설치, 북변 일대를 랴오둥[遼東]에 귀속시키려 하자 랴오둥정벌을 계획,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가 되어 정벌군을 이끌고 출정했으나, 이성계 등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으로 랴오둥정벌이 좌절되었다.

이성계군이 개성에 난입하자 이를 맞아 싸우다가 체포되어 고봉(高峰:高陽) 등지에 유배되었다가 개경(開京)에서 참형(斬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