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메뉴 닫기
서브페이지 배경
한성준 게시판 상세보기

[홍성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한성준
작성자 홍성문화원 등록일 2004-07-07 조회 435
첨부 png noname01.png

한성준은 우리 춤과 장단, 가락을 무대화하고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장본인으로서, 한국전통무용의 기틀을 닦은 대가이다.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생하였다. 8세 때 북채를 잡고 외조부에게 북을 배우다가 뒤에 박순조(朴順祚)에게 사사했다. 17세 때 명고수가 되어 5년 동안 15차의 창방(唱榜)을 치르고 김창환(金昌煥) 박기홍(朴基洪) 송만갑(宋萬甲) 이동백(李東伯) 정정렬(丁貞烈) 등의 고수를 지냈다. 창극의 장단으로 평타령 중모리 진양조 엇모리 휘모리 등에 특히 능했으며 명창 명무(名舞)로도 이름을 떨쳤고, 31세 때 서울에 정착해 원각사 등에서 고수로 활동했으며 고종으로부터 참봉 벼슬을 받기도 했다.

1933년에는 조선성악연구회 창립자의 한 사람이 되어 후진양성에 힘썼다.

무용에서도 혁신적인 체계와 기초를 세웠는데, 1935년 부민관에서 첫 작품발표회를 가진 이후, 63세 때인 38년 전통춤 교육의 산실인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설립, 한영숙, 강선영, 김천홍 등 기라성같은 무용가를 배출하여 전통춤의 가장 뚜렷한 맥인 벽사류(壁史流)를 이루었다.

1940년에는 제자들과 함께 일본의 도쿄 히비야공회당에서 공연을 하여 일본인들이 조선춤을 재평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41년 모던니폰사[モダン日本社]가 제정한 예술상을 받았으며, 만년에는 민속무용에 전념하여 흩어져 있던 무용의 체계를 세워 승무(僧舞) 학무(鶴舞) 태평무(太平舞) 등의 여러 무용을 무대화시켰다. 그가 무대화한 승무와 태평무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전승되고 있다.

한성준은 진지한 연구와 탁월한 예술성으로 역사적으로 전해오고 있던 춤을 체계화, 민간에서 민중들이 하던 일상적인 일의 몸짓, 생활습속 등이 어우러진 민속예술을 기반으로 하여 무당, 광대 등 천민계급의 재인활동에 궁중무악요소까지도 수렴해 체계화했다.

한성준의 학춤을 비롯한 여러 전통무용은 민족적 전통과 유산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켰으며 봉건주의 사상이 기조를 이루던 전통무용의 관념을 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