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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蔡濟恭) 게시판 상세보기

[홍성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채제공(蔡濟恭)
작성자 홍성문화원 등록일 2004-07-09 조회 429
첨부 gif 홍성문화원.gif
채제공의 자는 백규(伯規)이요, 호는 번암(樊菴)이니 평강인 지
사 응일의 아들이다. 참판 성 윤의 손자로 숙종 경자년(720)
에, 출생하였는데 그의 어머니의 꿈에 황룡이 지붕을 뚫고 하
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를 낳았다고 한다. 세 살 때의 일이
다. 어머니의 젖을 먹다가 이 빨로 잘못하여 젖을 다치고 놀래
울더니 사흘, 동안 젖을 먹지 않았다고 전한다. 18세가 되 던
해에 뜰 앞에 있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를 보고 한 시를 지었
다. 비록 구부러지고 앞을 막았으나 곧게 솟아 위로 향하는 마
음을 잊지 못한다. 縱成屈曲當前障 不忘升騰向上心 사람들이
이 시를 보고 모두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 하였다. 영조 계
해년에 문과에 합하 였는데 그때 장헌세자(莊獻世子)의 폐위(廢
位)의 전교가 내려 여러 승지들이 황공하여 어찌 할 줄을 몰랐
다. 다음날 새벽 제공은 홀로 왕을 뵈옵고 “이러한 전교는 신
하로서는 차마 듣 지 못할 바이오니 신이 죽더라도 감히 전교를
발표할 수 없사옵니다”라고 아뢰니, 왕이 크 게 노하여 자리에
서 뜨고자 하였다. 제공이 왕의 앞에 나아가 옷자락을 잡고 소
리내어 통곡 하며 전교를 왕에게 다시 바쳤다. 왕이 이 광경을
보고 얼마 있다가 노여움을 풀었다고 한 다. 임오년에 어머니
의 상을 당하였다. 그때 영조가 장헌세자를 기어코 폐위하려 한
다는 소 식을 들었다. 제공은 상복을 벗고 창덕궁에 나아가 땅
에 엎드려 가슴을 치며 십여일을 통곡 하였다. 그러나 영조가
듣지 않고 장헌세자에게 죽음을 명하였다. 그 후 정조가 대위
에 오른 후 왕의 부름을 받고 대궐에 들어가니 “선대왕께서 나
의 손을 잡으시고 나와 너의 부자의 사 이를 보전하게 한 것은
체제공이니 나에게는 진실한 신하이요, 너에게는 충신이라는 말
씀 을 하셨다”고 하며 융숭한 대접을 하였다고 한다. 무신에
우상에서 영상(領相)에 이르 고 기유년에는 융릉(隆陵)을 받들
며 수원유수(水原留守)로 있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라 하였
는데 아들이 없어 족자(族子) 홍원(弘遠)으로 대를 이었다. 홍
원은 문과로 이조참의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