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안병찬(安炳瓚)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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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홍성문화원 | 등록일 | 2004-07-09 | 조회 | 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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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의 자는 치규(稚圭)요 호는 규당(規堂)이다. 순홍인 안창 식의 아들로 철종 계축년에 당시 홍주군이었 던 화성면에서 출생 하였다. 천성이 강직하고 세속에 초연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 아 오던 중 아버지를 따라 동학운동 때 목사 이승우를 도왔고 국 모시해사건이 발생하자 아버지와 같이 의병을 일으켰 다. 이승 우에게 체 포되어 홍주옥에 투옥되었다. 그러나 왜경에게 삭발 을 당하고 굴욕과 수모를 당하는 것보다 는 차라리 깨끗하 게 죽 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옥의 창지를 찢어 ‘志士不忘在湯 勇士 不忘喪其元 寧作斷頭鬼 不爲削髮人’이라 는 혈서를 쓴 뒤 목을 찔러 옥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왜경이 달려와 생명이 겨우 붙 어 있음 을 보고 치료를 하 자 음식을 전폐하고 투약을 거절하 여 죽기를 결심하였으나 옥중 동지들의 설득으로 하자 겨 우 연 명하게 되었 다. 경성 감옥으로 끌려가 재판장 이범진에게 재판 을 받으며 법정 진술에서 “지난해 국변이 있은 후 또 다시 삭발 령을 내리고 길가는 행인까지 함부로 붙들어다가 삭발을 시키는 이러한 역적들을 없애 고 국사를 바로잡 는 것이 나의 소원인데 뜻을 이루지 못하였느니 다만 죽음만을 기다릴 뿐이다” 라고 하 였 다. 이에 조정에서는 특사를 내리고 홍릉주사(洪陵主事)에 임명하였으나 거절하고 돌아왔다. 광무 10년 을사조약에 분노 한 그는 기어코 역적의 무리들을 소탕하여 쓰러져가는 나라를 바 로잡고자 의병 을 일으켜 홍주성을 향하여 진격하려 하다가 결 국 일경에세 체포된 뒤 공주감옥에 투옥되었 다. 관찰사 서리 (觀察使署理) 박찬의 심문을 받으면서도 그의 태도가 태연자약 한데는 왜경들도 경탄하였다 고 한다. 병찬의 아우 병림도 민종 식과 의거할 것을 모의하다가 체포되어 9개월의 옥고를 치렀 다. 정미년에 는 또 다시 왜신의 무고로 형제가 공주감옥에 투 옥되어 온갖 악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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