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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식(閔宗植) 게시판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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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민종식(閔宗植)
작성자 홍성문화원 등록일 2004-07-09 조회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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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인(驪興人) 민종식은 판서 민영상(判書 閔泳商)의 아들로
자는 윤조(允祖)요 호는 퇴초 (退樵)라 하였다. 고종조에 문과
에 합격하여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있었으나 일본의 침략으로
국운이 기울 어지고 조정에 친일매국도배(親日賣國徒輩)로 정사
가 날로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청 양군 정산면 천장리(靑
陽郡 定山面 天庄里)에 내려왔다. 그 후 고종의 부름을 받고 궐
내에 들어가 고종의 밀지(密旨)를 받고 다시 정산으로 내려와
가재(家財)를 털어 의병을 모집하 기 시작하였다. 이 소식을 들
은 뜻 있는 인사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불과 며칠 만에 수천에
달하였다. 홍산(洪山)을 출발하여 남포(南浦)를 거쳐 보령(保
寧)을 다시 홍주성을 점거한 뒤 군비(軍備)를 갖추어 진세(陣
勢)를 정돈하고 도성을 향해 역적의 무리를 소탕하고 일인 을
물리치고자 하였다. 그러나 윤 4월 9일 일군에 의하여 성문이
폭파되고 성내에 돌입한 일 군과 백병전이 전개되었으나 중과부
적(衆寡不敵)으로 의병들이 대개 옥쇄(玉碎)하는 처참 한 장면
을 보였다. 이에 앞서 의병대장 민종식은 성을 넘어 각지를 전
전하다가 예산군 대술면 평원정(禮山郡 大述面 平遠亭)에서 김
덕진(金德鎭), 정재호(鄭在鎬), 이세영(李世永), 박윤식(朴潤
植), 이용 규(李容珪) 등과 재기(再起)할 것을 모의하였으나
사전에 일군에게 발각되어 현장에서 포위 당하였다. 민종식은
여기에서 탈출하여 공주 탑산리(公州 塔山里)에 은거하였다가
체포된 뒤 고등재판소(高等裁判所)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고종의 특사(特赦)로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