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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보령시
작성자 보령문화원 등록일 2002-05-27 조회 1666
첨부  
 

보 령 시 


보령시는 충청남도의 서남부 지역, 차령 산맥과 서해 사이에 위
치한다. 북부는 홍성군(洪城郡) 서부면(西部面)·결성면(結城面)
·은하면(銀河面)·광천읍(廣川邑)·장곡면(長谷面)과 접하고 동
부는 청양군(靑陽郡) 화성면(化城面)·남양면(南陽面), 부여군
외산면(外山面)·내산면(內山面)·홍산면(鴻山面)·옥산면(玉山
面)과 접하고 남부는 서천군(舒川郡) 판교면(板敎面)·비인면(庇
仁面)·서면(西面)과 접하고 남부는 황해와 접하고 있어 많은 유
·무인도를 포함단다.
보령시 지역은 1914년 3월 일제의 부군통폐합령(府郡統廢合令)
에 의하여 과거의 보령군·남포군·오천군에 통례합되어 보령군
으로 개편되면서 하나의 지역사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과거의 보령군은 주포를 중심으로 한 현 보령시 북부 지역으로
백제 시대에는 신촌(新村)으로 불렸으며 통일신라 시대에는 신읍
(新邑)이라 불리다가 고려 태조 23년에 보령현으로 개정되었으
며 1895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보령군으로 개칭되었다.
남남남남나남포군(藍浦郡)은 남포를 중심으로한 보령시의 남부
지역으로 백제 시대에는 사포(寺浦)로 불렸고 통일신라시대에 남
포현으로 개칭되었다가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남포군으로 불
리게 되었다.
오천군(鰲川郡)은 오천을 중심으로한 보령시의 서북부와 도서지
역으로, 옛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을 중심으로 생긴 군이다.
충청수영은 조선 태조 5년(1397)에 수군첨절사(水軍僉節使)를 두
기 시작하여 세종 3년(1421)에 도안무처치사(都安撫處置使)를 두
고 세종12년(1466)에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두었으며 1895
년 지방 관제 개편에 따라 수영(水營)이 폐지되고 고종 광무 5년
(1901) 4월 18일 오천군을 신설하였다. 사무실은 구 장교청에 두
었으며 보령군 김신면(金神面), 홍성군 전천면(田川面), 안면도
(安眠島)·가의도(賈誼島), 비인군(庇仁郡) 연도(烟島), 서천군
개야도(開也島)·죽도(竹島) 등을 오천군에 소속시켜 천동면(川
東面)·천북면(川北面)·하남면(河南面)·하서면(河西面)·면상
면(眠上面) 등 6개면을 두었다. 그러다가 1906년 10월 면상면(眠
上面)과 면하면(眠下面)은 태안군으로 이속하였고 1914년 부군폐
합령(府郡廢合令)에 의하여 하남면(河南面)의 연도(烟島)·개야
도(開也島)와 하서면(河西面)의 어청도(於靑島)가 전라북도 옥구
군으로 이속되고 나머지는 보령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이후의 보령군은 주포면(周浦面)·청소면(靑所面)·대천
면(大川面)·청라면(靑羅面)·남포면(藍浦面)·웅천면(熊川面)·
주산면(珠山面)·미산면(嵋山面)·오천면(鰲川面)·천북면(川北
面)의 10개 면 110개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62년 11월 21
일 대천면이 대천읍으로 승격되고, 1986년 1월 1일 대천읍이 대
천시로 승격되면서 보령군과 분리되어 원동·대천동·대신동·흑
덕동·왕대동·현포동의 6개동을 두었다가 1995년 3월 2일자로
웅천면이 웅천읍으로 승격되었다. 1998년 10월 15일에는 왕대동
이 폐지되어 현포동으로 통합되었다.
따라서 보령시는 웅천읍·주포면·주교면·오천면·천북면·청소
면·청라면·남포면·주산면·미산면·성주면·원동·대관동·대

신동·흑덕동·현포동의 1읍 10개면 5개동을 관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