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웅천읍 구룡리(九龍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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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보령문화원 | 등록일 | 2002-05-27 | 조회 | 10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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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백제)때는 寺浦峴(사포현)에 속했었다. 新羅(신라)때는 蘇 浦 縣(소포현)에 속했으며 高麗(고려)때는 藍浦縣(남포현)에 속했었 다. 朝鮮(조선) 때에도 藍浦縣(남포현)에 속했으며, 朝鮮末 葉(조 선말엽)엔 藍浦郡(남포군) 熊川面(웅천면)의 地域(지역)으 로서 아 홉 龍(용)이 구슬을 다투는 九龍爭珠形(구룡쟁주형)이 라 하여 구 룡(九龍)이라 하였는데, 1914年 行政區域(행정구역) 改革(개혁)때 長佐洞(장좌동), 下九里(하구리), 花望里(화망리) 일부를 병합하여 九龍里(구룡리)라 해서 保寧郡(보령군) 熊川面 (웅천면)에 編入(편 입)되었고, `95년1월 1일 법률 제4774호로 대천시와 보령군 통합, 보령시가 된후 `95년3월 2일 보령시 조 례 제138호로 웅천면에서 웅천읍으로 승격되었다.白奎洙(백규 수) 黃稷先生(황직선생))이 사시던 곳이기도 하다. 건 너 마 을(정 굴) 花望(화망) 南(남)쪽으로 건너에 자리한 마을을 「건너마을」이 라고 부른다. 건너쪽에 있다해서 「건너마을」이라고 부른다. 花 望(화망) 長佐洞(장좌동) 北(북)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花望(화 망)이라고 부른다. 「대천리」의 花落山(화락산)을 바라보는 位 置(위치)에 자리한 마을로 꽃을 바라보고 있다해서 花望(화망) 이 라고 부른다 한다. 長 佐 洞(장좌동) 花望(화망) 南(남)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長佐洞(장좌 동)「장좌울」이라고 부른다. 옛날에 長者(장자)들이 살았다 해 서, 長者(장자)들이 자리한 마을 이라 長佐洞(장좌동), 「장좌 울」이라고 부른다. 되 고 개 「아래뜸」에서 「마차울」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 를 「되고개」라고 부르고, 그 고개를 자리한 마을도 고개 地 名 (지명)에 따라 「되고개」라고 부른다. 九龍(구룡)의 아래쪽 이 됨으로 下九里(하구리)라고도 부르는 마을이다. 마 차 울 長佐洞(장좌동) 서북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마차 울」이라고 부른다. 또한 "마차"라고도 부른다. 큰 마 을 안마을 바깥쪽으로 자리한 마을을 큰마을이라고 부른다. 花望里 (화망리)의 원 마을이다. 오래전부터 자리해 있는 마을이다. 아 랫 뜸 長佐洞(장좌동) 아랫쪽으로 마을이 있다해서 이 마을을「아래 뜸」이라고 부른다. 長佐洞(장좌동) 아랫쪽에 자리해 있다해서 「아랫뜸」이라고 부른다. 안 마 을 큰 마을 안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안마을」이라고 부 른다. 마을 안쪽으로 자리해 있다해서 「안마을」이라고 부른 다. 굴 고 개 花望(화망)에서 藍浦面(남포면) 「원전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굴고개」라는 고개다. 「큰마을」위쪽에 있는 고개인데, 고개 아 래엔 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도 고개 地名(지명)따라 「굴 고 개」라고 부른다. 盤 松 亭(반송정) 九龍里(구룡리)에 있는 소나무를 지금으로부터 180餘年(여년)전 에 白東賢(백동현)이란 사람이 아홉 살때 소나무 두그루를 심 었 는데, 이 나무가 뿌리가 되어 자라서 네그루가 되었다가 여덟 그 루가 되었다. 白氏(백씨) 30餘號(여호)가 사는 마을에 있는 여 기를 盤松亭(반송정)이라고도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