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웅천읍 죽청리(竹淸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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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보령문화원 | 등록일 | 2002-06-01 | 조회 | 1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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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백제)때는 寺浦縣(사포현)에 속했었다. 新羅(신라)때는 蘇 浦 縣(소포현)에 속했으며 高麗(고려)때는 藍浦縣(남포현)에 속했었 다. 朝鮮(조선)때는 藍浦縣(남포현)에 속해서 朝鮮末葉(조 선말엽) 엔 藍浦郡(남포군) 熊川面(웅천면)의 地域(지역)인데, 1914年 行 政區域(행정구역) 改革(개혁)때 大靑里(대청리), 小靑 里(소청리), 場基里(장기리), 峰伍里(봉오리)와 「주교리」,「화 망리」의 各一 部를 병합하여 竹淸里(죽청리)라 해서 保寧郡(보 령군) 熊川面(웅 천면)에 編入(편입)되었다. `95년1월 1일 법률 제4774호로 대천시와 보령군 통합, 보령시가 된후 `95년3월 2일 보령시 조례 제138호로 웅천면에서 웅천읍으로 승격되었다.옛날 엔 淸洞(청동)이라고 부르던 지역 이다. 玉濟(옥제) 白觀亨(백관 형) 先生(선생)의 出生地(출생지)이다.(五列士(오열사)의 한분) 봉 오 재 小靑里(소청리) 북쪽에 있는 山(산)을 「봉오재」라고 부른다. 朝鮮(조선) 初期(초기)에 餘道岾烽首(여도참봉수)가 있어서 通 達 山(통달산) 북쪽으로 保寧縣(보령현)의 助侵山烽首(조침산봉 수) 에 통하였는데, 朝鮮(조선) 中葉(중엽)에 「옥마산」으로 옮 겨갔 었다. 봉수대가 있었던 산(山)이라 「봉오재」라 부르고 산 아래 에 있는 마을도 山名(산명)따라 「봉오재」라고 부른다. 俸 五里 (봉오리)라고도 부른다. 대 청 리(大 靑 里) 소청리(小靑里) 東南(동남)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大 靑 里(대청리)라고 부른다. 대나무가 무성한 지역의 큰 마을이었 다. 해서 옛날부터 大靑里(대청리)라 불렀다. 잣 나 뭇 골 「봉오재」 북쪽에 자리한 마을을 「잣나뭇골」이라고 부른다. 옛날엔 골짜기였는데 잣나무가 많은 골짜기였으므로 「잣나무 골」이라고 그때부터 그리 불렀었다. 각 골 小靑里(소청리) 東南(동남)쪽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각 골」이라고 부른다. 마을 갓에 자리해 있는 마을이라 「각골」, 「갓골」이라고 부른다. 小 靑 里(소청리) 大靑里(대청리) 西北(서북)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小 靑 里(소청리)라고 부른다. 竹靑里(죽청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 이다. 양 지 뜸 「각골」北(북)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이 「양지뜸」이라 고 부르는 마을이다. 마을이 양지바른 곳에 자리해 있다해서 「양지뜸」이라고 부른다. 음 지 뜸 大靑里(대청리) 東南(동남)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음 지뜸」이라고 부른다. 마을이 음달진 곳에 자리해 있다해 서 「음지뜸」이라고 부른다. 장 터 小靑里(소청리) 北(북)쪽으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장 터」 라고 부른다. 「장기리」라고도 부르는데 옛날에 장이 섰 던 마 을이라 「장터」라고 부른다. 이 청(二 靑) 大靑里(대청리)와 小靑里(소청리)를 통틀어 二靑(이청)이라고 부 른다. 대나무(竹)가 많은 이곳의 큰무슬(大靑), 작은무슬(小 靑)을 하나로 통털어 부를때는 二靑(이청)이라고 부른다. |